1. 과제개요
본 연구는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온 군인들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구술채록을 통해, 한국현대사에서 군이 담당한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대한민국 발전과 한국군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군과 국가안보, ‘한국군과 경제발전, ‘한국군과 민주화, ‘한국군과 인력양성, ‘한국군과 군사문화’ 등을 규명한다는 문제의식에 근거한다.
2. 구술개요
일본군 경험, 한국전쟁 경험, 육군사관학교 생활, 해방 후 토지행정처 근무, 경리교육대 근무, 육군본부 예산편성관 근무, 5·16 후 산업은행감독관, 국유재산조사위원회 위원장 경험, 춘천지구경리대장 근무, 베트남 전쟁 경험
1회차 면담 / 2010-04-02 / 03:00:00
1. 면담개요
출생 기억과 가족, 징병과 일본군 생활, 대구상업학교 시절, 해방 시절 기억, 육군사관학교 입대, 육군사관학교 교육, 육군사관학교 일상생활, 한국전쟁 경험(전쟁 발발 직후, 북진 시 경험)
2. 주요색인어
일본군 징병, 대구달성공립보통학교, 대구상업학교, 대구 10월항쟁, 육군사관학교, 육사9기, 경리병과, 3사단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 1-1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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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의 기억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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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조부가 유명한 한의사로 유복한 집안이었음.
- 집안 내력: 아버지(홍순용)는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한 유학생 출신이나, 39세에 요절. 어머니(이순덕)는 달성여학교를 나온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음.
- 구술자는 어렸을 적에 이상화(어머니 집안)의 집에서 머문 경험 있음. 이상화로부터 많은 감화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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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 ~ 00:1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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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징병과 일본군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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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병되기 직전에 결혼. 4대 독자여서 빨리 결혼했던 것.
- 행선지도 모른 채 징병되어 이동. 남양으로 갈 줄 알았으나 규슈 북방 나가사키 근방 마츠우라 해안지대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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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1:52 ~ 00:2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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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구상업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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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달성공립보통학교 재학
- 구술자는 공부를 잘 하는 편이어서 대구상업학교 진학.
- 일본인 교사 회상: 교장이었던 무라다라는 인물은 한국 학생들을 측은하게 생각했음. 한국 학생들이 무엇이든지 일본 학생보다 잘 했다고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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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2:02 ~ 00:3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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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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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 시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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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임 선생 기억: 한국 학생들이 조선어 성적이 좋지 않자 호통을 쳤던 일이 있었음. 이종임은 후에 대구상업학교 교장, 경북고등학교 근무.
- 1946년 대구 10월항쟁 기억: 집안사람 중 경찰이 시위대에게 고초를 겪었던 일.
- 1949년 7월 육사 9기로 입대. 경리 병과 분류. 1950년 1월 14일 소위 임관.
- 일본군에서 고생한 경험 때문에 다시는 군대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나, 해방 후 혼란상을 목격하며 군 입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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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 ~ 00:1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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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군사관학교 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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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입학시험 내용: 국어, 국사, 영어, 수학. 고등학교 수준 난이도.
- 9기는 마지막 단기교육 기수. 입학생 나이가 대체로 20대 중후반으로 많은 편이었음.
- 병과별로 입교시기가 다른 경우 있었음
- 697명 임관했는데 한국전쟁 때 200명 가까이 사망.
- 태릉 근처 공덕리 분교에서 교육 받음.
- 전쟁 중에 형성된 동기애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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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1:45 ~ 00: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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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육군사관학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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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범은 미국식이나 실제 교육 방식은 일본식. 교관들이 일본군 출신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
- 초급 경리교육은 그다지 전문적인 수준의 내용은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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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2 ~ 00:2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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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사관학교 교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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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육군본부에서 예산편성관 할 때 기억. 대부분의 물자가 미군원조였으므로, 한국군이 처리하는 예산은 급식과 봉급 정도.
- 당시 육사 교장 김홍일, 부교장 이한림 기억: 김홍일의 정신 훈화 내용 회고.
- 구대장이었던 박춘식 기억: 만군 출신. 소부대 전술 탁월.
- 당시 교관 손희선, 손관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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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4:56 ~ 00:3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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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육군사관학교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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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식이 부실했음
- M
- 1 소총으로 교육 받았음.
- 내무반 이야기: 구술자는 지방 출신이어서 외출 나가지 않고 내무반 당번 맡는 경우가 많았음
- 경리병과에서 군번이 가장 앞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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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3:19 ~ 00:4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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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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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전쟁 경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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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폐 수송 작전. 인근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강릉까지 수송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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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 ~ 00: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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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전쟁 경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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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임관 후 육군본부 경리과 배치. 경리과장 이규동(전두환 장인)
- 대구에서 근무하고 싶어 이규동에게 대구 3사단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요청. 1950년 6월 초 3사단 부임. 3사단장 유승렬 대령(유재흥 부친), 참모장 이치업 중령. 당시 3사단은 지리산 공비 토벌 임무 수행 중.
- 6월 25일 주번사령으로 근무 중 한국전쟁 소식 접함.
- 참모장 이치업이 1개 대대를 이끌고 김포로 먼저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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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0:28 ~ 00:4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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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전쟁 경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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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3사단이 동해안 주도 따라서 진격하다가 포항에 있던 부대 후방이 습격 받았던 때 기억. 구술자는 대구 육군본부 출장 중이어서 직접 겪지 않았음. 당시 미함대가 함포사격으로 지원
- 1950년 10월 북진시 사단장 이총잔, 참모장 정래혁. 구술자는 사단본부 근무.
- 1950년 10월말 삼척 식산은행에서 남북한 화폐 압수. 구술자가 수송 작전 책임 맡음. 수송 중 주문진에서 습격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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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57 ~ 01: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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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면담 / 2010-04-16 / 03:00:00
1. 면담개요
일본군 경험, 종전과 귀국 과정, 해방 시기 생활(토지행정처 근무), 육군사관학교 생활, 한국전쟁 경험(북진 경험, 원산 주둔 경험), 경리교육대 경험, 춘천지구경리대, 육군본부 예산편성관 근무 경험, 5·16 후 산업은행감독관 근무 경험, 국유재산조사위원회 근무 경험
2. 주요색인어
일본군, 선박공병부대, 건국준비위원회, 토지행정처, 적산관리위원회, 동양척식주식회사, 육군사관학교, 육사 9기, 3사단, 수도사단, 1군단, 오십천교폭파사건, 경리교육대, 춘천지구경리대, 국유재산조사위원회, 5·16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 2-1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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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전인터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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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 해방 전 후쿠시마의 7446부대에서 선박공병과에 있었음
- 1954년부터 1961년까지 육군본부에서 예산편성담당으로 일함
- 훈장을 몇개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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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 ~ 00: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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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전인터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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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후에 국유재산조사위원장을 함
- 해방 이후 경남 감포로 돌아옴
- 돌아왔을 때 김일성과 이승만을 동시에 찬양하는 함성을 들음
- 8월 26일 서울로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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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56 ~ 00:1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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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본군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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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항 출발, 하카다 만 도착. 징병된 사람들은 대구 출신도 있으나 대부분 이북 출신.
- 나가사키현 미나미 마츠우라에 있는 7446 선박공병부대 배치. 중대장 당번병 근무.(일본어 실력으로 임명)
- 선박공병부대의 주임무: 선박을 은폐하기 위해 동굴을 파는 일
- 일본 패전 직전 부대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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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4:15 ~ 00:2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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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전과 귀국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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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전 소식 들은 직후 조선인들은 귀국길 걱정. 부대의 조선인들끼리 모여 시모노세키로 가서 8월 말 귀국. 구술자가 조선인 집단 대표자 노릇 했음.
- 밀항선 타고 귀국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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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7:05 ~ 00:4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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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방 시기 생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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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지역 건국준비위원회 기억: 이상백(서울대 사회학과 창설)이 건준 활동했던 기억
- 이상정, 이상화, 이상백, 이상오 형제들과 인연
- 1946년 후반 토지행정처 근무. 대구지방 과수원관리소장 직책 역임. 일본인들이 경영했던 사과농장 관리.
- 적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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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42 ~ 00:5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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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해방 시기 생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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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수원관리 업무 맡으며 각종 민원에 속을 썩였던 경험.
- 일제 시기 때 상업학교 졸업 직후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근무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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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4:49 ~ 00:5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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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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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군사관학교 생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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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교과 내용. 육사 9기는 단기교육으로 6개월 교육 과정. 전반기 전투 기본 훈련과 후반기 병과 교육.
- 여가시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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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 ~ 00:1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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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군사관학교 생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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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에서 체육활동: 럭비, 수기훈련.
- 급식 질은 낮았음
- 정신훈화 관련: 매주 토요일 오전에 정신훈화. 교장 김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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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4:29 ~ 00:2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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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전쟁 경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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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사단과 수도사단이 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따라서 북진. 1군단장 김백일. 수도사단장 송요찬.
- 3사단이 양양 넘어 북진할 때의 분위기. 모두들 의기양양한 기분이었음. 쉬지 않고 북진하라는 명령 받았음.
- 구술자는 오십천교 폭파사건은 잘 모름.
- 북진 시 주민들의 동향. 대민사업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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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2:32 ~ 00:3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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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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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천지구경리대, 육군본부 예산편성관 근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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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춘천지구경리대장 근무
- 1954년부터 육군본부 예산편성관 근무. 국회 예산 심의할 때 보좌 업무 맡았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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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 ~ 00:0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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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16 후 산업은행감독관 근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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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에 별달리 관여하지 않음. 5·16에 참가했던 동기생 강상욱 언급.
-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산업은행감독관 임명되어 1년여 간 근무. 인사 비리 조사, 원조자금 비리 조사
- 산업은행장 나익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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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6:46 ~ 00:2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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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유재산조사위원회 근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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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국유재산조사위원회 위원장 임명. 육사 출신 대위들 동원하여 전국의 국유재산 조사. 당시 재무부장관 천병규와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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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6:14 ~ 00:3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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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전쟁 경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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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사단 원산 진입 시 분위기. 인적이 드물었음.
- 원산 폭격 관련 문제는 잘 모름. 사단본부는 흥남질소비료공장에 자리 잡았음.
- 3사단과 수도사단 중 어느 부대가 먼저 원산 점령했는지의 문제
- 서울 수복 당시 중앙청에 태극기 달았던 박정모(육사 9기 동기생) 언급
- 원산 부근 여왕산 학살 사건은 잘 모름
- 1950년 12월경 경리교육대 창설요원으로 발령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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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2:52 ~ 00:4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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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리교육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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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리교육대에서 교관 및 교육계획 작성 임무 수행
- 경리교육대장은 최경섭 소령(육사 7기 특기)
- 처음에 경리교육대는 동래 해운대성당 위치. 이후 경북 하양으로 이동.
- 나중에 황인성이 경리학교 교장할 때 박정희가 경리교육 받았던 에피소드.
- 경수회(경리병과 장성들 모임) 언급. 황인성, 김일환 등 소속.
- 경리 교육에서 미국식 교범 도입. 1960년대 초에 전산회계 시스템 도입. 민간보다 월등히 앞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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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3:44 ~ 00:5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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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본부 예산편성관 근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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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한국군 예산이 한국 전체 예산의 1/3 차지.
- 춘천지구경리대장 재직 시 경험. 당시 전방에서 현금 강탈 사건이 자주 있었으나, 구술자 재직 시에는 발생하지 않았음
- 당시 국방예산은 정치인들이 전용하지 못했음.
- 1950년대 당시 군 내 북진통일 관련 분위기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음. 미군 원조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비현실적인 목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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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48 ~ 00:1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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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차 면담 / 2010-08-20 / 03:00:00
1. 면담개요
춘천지구경리대장 근무 경험, 일본군 경험과 해방 후 경험, 베트남 전쟁 파병, 육군본부 경리감 근무 및 전역 후 활동
2. 주요색인어
춘천지구경리대, 일본군, 육군사관학교, 베트남 전쟁, 주월한국군사령부, 세임베이스(same base)정책, 월남군, 한국유리, 한국능률협회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 3-1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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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전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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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술자가 가져온 사진을 보면서 면담 준비를 한다.
- 구술자가 자료 기증 차원에서 사진을 제공하겠다고 말함. 추후 돌려주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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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 ~ 00: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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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춘천지구경리대장 근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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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1950년대 한국군 운영 자원은 대부분 미국의 군사원조. 한국군 자체로 부담하는 경비는 급여와 급식비 정도.
- 춘천지구경리대는 1군사령부 직속부대. 중동부 전선 위치 부대들의 급식과 급여비 관리
- 1960년대 중반 군원이관 문제는 잘 모름. 당시 한국군은 군대 재정 운영 문제에 어두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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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30 ~ 00:1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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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본군 경험과 해방 후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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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징병 경험과 해방 후 육사 입대 계기, 소위 임관 후 한국전쟁 전까지 근무 경험 소개. (지난 구술 인터뷰 내용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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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6:21 ~ 00:2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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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베트남 전쟁 파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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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월한국군사령부 초대 사령관 채명신. 구술자는 초대 경리관리참모로 선발. 당시 초대 참모로 뽑힌 장교들은 한국군 최정예라고 할 수 있었음.
- 베트남 현지에서 대민사업에 신경을 썼다.
- 월남군은 상당히 자존심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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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8:31 ~ 00:3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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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베트남 전쟁 파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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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파병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가 한국 경제성장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 박정희 대통령의 파병 결단 칭찬.
- 베트남으로 파병된 장교들은 사기가 매우 높았음.
- 보통 장교들의 베트남 근무 기간은 1년이나, 구술자는 1965년 10월부터 1968년 3월달까지 2년 반 정도 근무.
- 경리참모 역할: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 분배. 일부 파병 장병 월급 지급, 일부 한국으로 송금. 되도록 군수물자도 한국 제품으로 충당했다.
- 세임베이스(same base) 정책: 급여 이외에 한국군과 미군 대우를 같은 수준으로 하기로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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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8:25 ~ 00:5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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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베트남 전쟁 파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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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술자는 경리관리참모로서 경리 업무와 관리 업무 겸임했음
- 세임베이스 정책 실무 협의 담당. 미군 측과 갈등 끝에 1966년 초 세임베이스 정책 합의
- 구체적인 업무: 미군 측에서 달러로 예산을 받아 월남 화폐로 환전하여 급여 지급. 나머지는 한국은행으로 송금. 대개 총액의 80%는 한국으로 보냈음. 한국의 중앙경리단에서 각 가정으로 분배.
- 미국은 당초 원화로 예산 지급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한국 측이 달러 지급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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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0:53 ~ 00:5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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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베트남 전쟁 파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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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무역이 성행했는데, 한국군이 밀무역 자금을 관리하는 데 강하게 반대. 결국 사령관의 동의 얻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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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7:52 ~ 01:0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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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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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을 보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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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명신 장군 사진을 보며 담소
- 춘천지구경리대장시절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
- 이훈섭 장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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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 ~ 00: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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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트남 전쟁 파병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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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미군은 주한미군에 비해 우월의식이 약하여 한국군과 부드러운 관계 맺었음.
- 지원병과보다 전투병과를 우선시하는 풍토에 문제제기. 채명신이 주월한국군사령관 재직하면서 경리나 관리 분야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인정한 이야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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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7:27 ~ 00:2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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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트남 전쟁 파병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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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월한국군사령부 분위기: 참모부들끼리 화목하고 사기가 높았음
- 채명신, 이훈섭 장군 기억: 채명신이 귀국을 만류하여 오래 근무하게 된 것. 이훈섭은 행정 역량이 뛰어났음.
- 민사업무 관련: 해군사관학교 교장 역임했던 신상대가 민사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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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4:32 ~ 00:3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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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베트남 전쟁 파병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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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 군인들과 베트남 여성들과의 관계 문제: 사령부 기본 방침은 엄벌주의였으나, 당초 우려보다는 사고가 적었음.
- 베트남 전쟁은 한국군의 실전 경험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 베트남 파병은 실보다 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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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28 ~ 00:5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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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베트남 전쟁 파병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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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임베이스 정책: 한국 생산 군수물자 도입 방식은 달러로 구매하는 방식.
- 세임베이스 정책 합의하는 데 이훈섭 부사령관의 역할이 컸음
- 해외근무수당 책정 과정에서 최대한 급여를 높이려고 노력했음
- 송금 종류 설명: 정기송금, PX대금, 조의금, 기타 송금
- 한국군과 미군 급여 차이에서 불만이 있었음.
- 한국군과 미군 관계는 좋은 편. 한국군이 유능했기 때문. 반면 미군은 월남군은 믿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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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16 ~ 00:1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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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베트남 전쟁 파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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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에서 일상생활: 장교들은 호텔에서 기숙. 미군 헌병이 경계 수행했음. 테러를 우려하여 외출할 때 사복 착용하고 권총 휴대.
- 베트남 현지 여성들 사무원으로 고용. 베트남인들은 항상 낮잠 시간을 가졌음. 한국인들은 낮잠 안 잤음.
- 사병들은 대부분 사령부 막사에서 생활
- 급식은 주로 미국 음식 뷔페식이었음.
- 사이공 시내에서 테러가 자주 발생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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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2:32 ~ 00:4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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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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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군본부 경리감 근무 및 전역 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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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본부 경리감 근무: 베트남에 파병할 경리 장교들 교육에 중점.
- 1970년 준장 예편.
- 전역 후 한국유리 근무: 전무로 들어가 사장 거쳐 부회장까지 역임
- 한국능률협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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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0:31 ~ 00:5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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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술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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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세대의 안보관 걱정. 구술자를 비롯한 연구자들의 역할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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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8:39 ~ 01: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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