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제개요
본 연구는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온 군인들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구술채록을 통해, 한국현대사에서 군이 담당한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대한민국 발전과 한국군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군과 국가안보, ‘한국군과 경제발전, ‘한국군과 민주화, ‘한국군과 인력양성, ‘한국군과 군사문화’ 등을 규명한다는 문제의식에 근거한다.
2. 구술개요
출생과 북간도 이주, 중학생 시절, 주오대학 진학과 학병 입대, 견습사관 시절, 학병단 생활과 군사영어학교 입교, 군사영어학교 시절, 1연대 소대장 시절, 8연대 시절, 부대의 근무조건, 군정시대 통위부와 방첩대, 정훈국 보도과장 시절, 3사단 참모장과 부대 훈련, 국민방위군과 정훈국, 정훈국 보도과장으로 위문공연단 결성, 위문공연단의 활동, 6·25 발발 당시의 상황, 9사단 부사단장과 육군 본부 재직 시절, 부산정치파동, 육군본부 전투정보과, 동해안반란사건, 5·16과 나, 서울신문사 감사와 반공연맹 사무총장, 반공연맹과 KBS기술이사
1회차 면담 / 2013-07-24 / 01:54:21
1. 면담개요
출생과 북간도 이주/중학생 시절/주오대학 진학과 학병 입대/견습사관 시절/학병단 생활과 군사영어학교 입교/군사영어학교 시절/1연대 소대장 시절/8연대 시절/부대의 근무조건/군정시대 통위부와 방첩대/정훈국 보도과장 시절
2. 주요색인어
북간도, 캐나다 선교회, 만주, 주오대학, 학병, 예비사관학교, 견습사관, 정훈국, 보도과장, 위문공연, 학병단, 군사영어학교, 육탄십용사, 숙군, 육탄십용사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 1-1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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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과 북간도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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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북도 무산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 가족이 만주로 이주하여 북간도 화룡에 정착함.
- 북간도 용정은 캐나다 선교회의 교구였음
- 문익환, 문동환이 구술자 동창임.
- 은진중학교에 입학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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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 00:1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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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학생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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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 동경으로 유학을 감.
- 간도에서 청산리 전투 당시 집안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함.
- 장래를 아들의 직업을 위하여 아버지가 동경으로 유학을 시켰음.
-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무척 멸시하였음.
- 은진중학과 일본의 중학교나 내용상 차이는 크지 않고, 다만 수신시간이나 교련 등이 달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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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0:04 ~ 00: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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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오대학 진학과 학병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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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주오대학 법과에 진학함. 당시 주오대학 법과는 유명한 과였음.
- 최남선이나 이광수 등이 학병 권유를 하였던 적이 있음.
- 철도나 배를 통해서 귀향을 하였음.
- 학병 입대 시 통지서는 없었음
- 보병부대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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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9:58 ~ 00:3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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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견습사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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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내무반 생활은 기합이 셌음.
- 예비사관학교를 거쳐 견습사관으로 부대에 배치받음.
- 견습사관 신분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는데, 8월 15일부로 소위임관과 예편을 동시에 시킴.
- 배를 타고 귀국하였으나 삼팔(38)선에 막혀 경성에 머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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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0:04 ~ 00:4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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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병단 생활과 군사영어학교 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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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음.
- 학병단에서 기거하고 구직 활동을 함.
- 백남권 장군의 소개로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함.
- 군사영어학교의 교육은 오직 영어뿐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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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0:00 ~ 00:5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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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사영어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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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영어학교에서 이응준 장군을 중심으로 만군 출신들이 몰림.
- 교관으로는 원용덕 장군과 김 목사가 있었음.
- 졸업 후 1연대에서 소대장으로 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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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0:01 ~ 00:5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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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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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연대 소대장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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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진과는 같이 근무를 얼마 하지 못했음.
- 김종원은 성격이 괄괄함.
- 만주군 출신과 지원병 출신은 끼리끼리 몰려 다녔음.
- 일본 육사 출신들은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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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 00: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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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연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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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군사관학교에서 일본육사로 간 것은 일종의 파견 근무임.
- 간도특설대는 일본 사람이 생각해서 만들 것이라고 추측함.
- 김일성 등은 일제시대 때 공산비적이라고 불렸음.
- 1연대 근무를 마치고 춘천 8연대로 부임함.
- 99식 소총과 미국 교범으로 군사훈련을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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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46 ~ 00: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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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대의 근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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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부대의 월급, 지원병 모집, 제복, 점호, 훈련, 무기 등에 대해 구술함.
- 통위부 정보국장으로 부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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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0 ~ 00:2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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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정시대 통위부와 방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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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예비사관학교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는 경험이 있음
- 군정시대에 한국인에게는 권한이 없었음.
- 김창룡은 일제시대 때 헌병대에서 끄나풀을 하던 인물인데, 그 경험으로 공산당을 잡아들임.
- 이병주를 잡아간 것도 그가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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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9:15 ~ 00:3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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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훈국 보도과장 시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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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훈국 보도과장에 부임함.
-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대에 정훈국의 존재 자체가 어불성설임.
- 육탄십용사는 정훈국의 작품이 아니라 1사단 김석원이 만들어서 선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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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9:56 ~ 00:4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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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훈국 보도과장 시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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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훈국이라는 것의 발상은 중국식임.
- 정훈국에서 한 일이 없음.
- 구술자가 보도과장을 하면서 장병들 위문한 것이 유일한 활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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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56 ~ 00:5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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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면담 / 2013-08-21 / 02:25:02
1. 면담개요
3사단 참모장과 부대 훈련/국민방위군과 정훈국/정훈국 보도과장으로 위문공연단 결성/위문공연단의 활동/6·25 발발 당시의 상황/9사단 부사단장과 육군 본부 재직 시절/부산정치파동/육군본부 전투정보과/동해안반란사건/5·16과 나/서울신문사 감사와 반공연맹 사무총장/반공연맹과 KBS기술이사
2. 주요색인어
부산정치파동, 5·16, 국민방위군, 정훈국, 위문공연단, 특무부대, 방첩대, 전투정보과, 동해안반란사건, 서울신문사, 반공연맹, KBS, 지리산의 봄소식, 육탄십용사, 9사단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 2-1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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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사단 참모장과 부대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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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사단 참모장으로 대구에서 근무했음.
- 사단장이었던 이응준 장군은 아주 얌전한 지휘관이었음.
- 사단의 훈련은 미군식이었음.
- 일본 99식 소총, 나중에는 미국 M
- 1소총과 미국 교범을 가지고 훈련했음.
- 일본과 미국은 무기와 훈련하는 방법이 약간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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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 00: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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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민방위군과 정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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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무반 생활의 경우, 일본보다 미국이 덜 빡빡함.
- 국민방위군은 그 시작부터 문제가 많은 군대임.
- 민주국가에서 정훈국은 그 존재부터가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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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26 ~ 00: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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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훈국 보도과장으로 위문공연단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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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훈국 보도과장을 하면서 언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음.
- 지리산전투사령부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문공연단을 만듦.
- 당시 연예인들은 무대가 없어서 공연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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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15 ~ 00:3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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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문공연단의 활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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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문공연단원의 신분은 민간인이었음.
- 위문공연단을 섭외하면서, 당시의 명동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특혜를 줌.
- 명동극장에서 반공극을 올려 큰 호응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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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0:04 ~ 00:4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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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위문공연단의 활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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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악극은 여순사건의 김지회를 지리산에서 토벌하는 것이 주내용임.
- 반공악극 공연을 하면서 구술자가 연설을 함.
- 귀순장병 환영대회 등도 정훈국 보도과에서 주관함.
- 예술인들을 주축으로 군예대를 만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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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0:01 ~ 00:5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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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25 발발 당시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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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와 관련되어 남침의 징조가 있었음.
- 6·25발발 당시에 일본 미군부대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음.
- 7월에 귀국하여 정보국에서 근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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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0:04 ~ 00:5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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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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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사단 부사단장과 육군 본부 재직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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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8 수복이후 9사단 창설시 부사단장으로 근무함.
- 사단 창설은 기간 요원이 있어야 가능함.
- 조암과 안익조의 부역행위 여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음.
- 특무부대를 창설해서 미군으로부터 심문교육 등을 받게 함.
- 군정 시대에는 한국인 자체의 기관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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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 00: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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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정치파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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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6 부산정치파동은 군의 쿠데타임.
- 원용덕 장군은 영어도 잘 하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욕심이 생겨서 망한 것임.
-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것은 자신의 신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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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56 ~ 00: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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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육군본부 전투정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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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의 승리는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부하들의 능력 및 운에 달려 있음.
- 당시 육군본부는 대구여고 자리였음
- 전투정보과에서는 첩보를 수집, 해석하여 정보를 만드는 것이 임무임.
- 육탄십용사는 정훈국과 관련이 없고, 정훈국은 그 이름 자체부터 문제인 곳임.
- 5·26 부산정치파동 당시 참모총장 명의로 훈령을 발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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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9:34 ~ 00:2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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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산정치파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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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파동 당시 고문관들은 중립을 지켰음.
- 부산정치파동과 관련해서 미국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자신은 알 수 없음.
- 이종찬 참모총장도 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이었음.
- 이후 제주도 훈련소 부소장으로 좌천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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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9:55 ~ 00:3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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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해안반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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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도 김창룡을 싫어하고, 김창룡도 자신을 싫어함.
- 부소장 재직 중 동해안반란사건으로 군법재판에 회부됨.
- 이 재판은 구술자 자신을 옭아매려고 꾸민 음모이기 때문에 자신을 구명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음.
- 1956년 출소 후 재심을 청구하여 전판결 무효를 받아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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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9:57 ~ 00:4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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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16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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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룡 사망 후 자신을 방면해준다 했지만, 거절했음.
- 5·16이전에 김종필이 찾아와서 만난 적이 있음.
- 5·16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불러서 청와대에서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으나, 정치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음.
- 박정희 대통령에게 장태화를 변호한 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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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8:45 ~ 01:0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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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회 구술 상세목록 |
구술시간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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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신문사 감사와 반공연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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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치기 등은 일종의 정치 브로커였음.
- 정보국 차장으로 이후락이 있었는데, 자기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기에 미국 병참학교로 보내버림.
- 서울신문사 감사로 10년 동안 재직함.
- 박정희 대통령의 지명은 반공연맹 사무총장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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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 00: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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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공연맹과 KBS기술이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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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연맹은 면리단위까지 퍼져있는 조직임.
- 반공연맹 사무총장은 유정회 국회의원 나가는 자리임.
- 이후 KBS기술이사를 역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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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0:12 ~ 00: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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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BS기술이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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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에서 기술직의 위상을 높였음.
- 남산송전소 단선 문제를 해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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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9:03 ~ 00:2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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