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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계약 해지 제9조 (계약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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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조 (자격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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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 서비스의 안정적인 운영을 방해한 경우
  4.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내용을 고의로 유포시킨 경우
  5. 4. 회원이 국익 또는 사회적 공익을 저해할 목적으로 서비스이용을 계획 또는 실행하는 경우
  6. 5.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게시, 게재, 전자메일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전송 하여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한 경우
  7. 6. 수신자의 의사에 반하는 음란, 저속, 위협적인 내용이나 광고성 정보, 전자우편 등을 지속적으로 전송하는 경우
  8. 7. 정보통신설비의 오 작동이나 정보 등의 파괴를 유발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프로그램 등을 유포하는 경우
  9. 8. "연구원", 다른 회원 또는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우
  10. 9.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외부기관의 시정요구가 있거나 불법선거 운동과 관련하여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은 경우
  11. 10. 타인의 개인정보, 이용자ID 및 비밀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경우
  12. 11. "연구원"의 서비스 정보를 이용하여 얻은 정보를 "연구원"의 사전 승낙 없이 복제 또는 유통시키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13. 12. 전기통신 관련법령 등에 위배되는 경우
  14. 13. 본 약관을 포함하여 기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정한 이용조건 및 관계법령에 위반한 경우

제4장 책임 제11조 ("연구원"의 의무)
  1. 1."연구원"과 제휴를 맺은 사이트와 "연구원"의 사이트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연구원"은 "회원"의 정보를 제휴 사이트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공유를 위해 "연구원"은 "회원"의 컴퓨터에 쿠키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2. 2. "연구원"은 "서비스" 제공으로 알게 된 "회원"의 신상정보를 본인의 승낙 없이 제3자에게 누설, 배포하지 않습니다. 단,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합니다.
    1. -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전기통신기본법, 전기통신 사업법, 지방세법, 소비자보호법, 한국은행법, 형사소송법 등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2. - 통계작성/학술연구 또는 시장조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형태로 제공하는 경우
  3. 3. "연구원"은 "회원"의 전체 또는 일부 정보를 업무와 관련 된 통계 자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4. 4. "연구원"은 "서비스"가 계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부득이한 이유로 "서비스"가 중단되면 지체 없이 이를 수리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단, 천재지변, 비상사태, 시스템 정기점검 및 "연구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거나 중지할 수 있습니다.

제12조 (회원의 의무)
  1. 1. 아이디와 비밀번호의 관리에 대한 책임은 "회원"에게 있습니다.
  2. 2. "회원"은 자신의 아이디를 타인에게 양도, 증여, 대여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사용하게 하여서는 아니됩니다.
  3. 3. 자신의 아이디가 부정하게 사용된 경우, "회원"은 반드시 "연구원"에 그 사실을 통보해야 합니다.
  4. 4. "회원"은 게시물에 등록된 데이터를 이용한 영업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5. 5. "회원"은 "연구원"이 보내는 공지 메일을 수신해야 합니다.

제13조 (회원의 게시물)
  1. 1. 게시물이라 함은 "연구원"의 각종 게시판에 회원이 올린 글 전체를 포함합니다.
  2. 2. 회원이 게시하는 정보 (및 질문과 대답)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이나 문제는 전적으로 회원 개인의 판단에 따른 책임이며, "연구원"의 고의가 아닌 한 "연구원"은 이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습니다.
  3. 3. 회원의 게시물로 인하여 제3자의 "연구원"에 대한 청구, 소송, 기타 일체의 분쟁이 발생한 경우 회원은 그 해결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하고 "연구원"을 위하여 분쟁을 처리하여야 하며, "연구원"이 제3자에게 배상하거나 "연구원"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회원은 "연구원"에 배상하여야 합니다.
  4. 4. "연구원"은 "회원"의 게시물이 다음 각 항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사전통지 없이 삭제 합니다. 그러나 "연구원"이 게시물을 검사 또는 검열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1. 1) 제3자를 비방하거나 중상 모략하여 명예를 손상시키는 경우
    2. 2) 공공질서,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내용인 경우
    3. 3) "연구원"의 저작권, 제3자의 저작권등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인 경우
    4. 4) "연구원"에서 규정한 게시기간을 초과한 경우
    5. 5) 상업성이 있는 게시물이나 돈벌이 광고, 행운의 편지 등을 게시한 경우
    6. 6) 사이트의 개설취지에 맞지 않을 경우
    7. 7) 기타 관계법령을 위반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5. 5. "연구원"은 "회원"이 등록한 게시물을 활용해 가공, 판매, 출판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제5장 정보제공 제16조 (정보의 제공)
  1. "연구원"은 "회원"에게 필요한 정보나 광고를 전자메일이나 서신우편 등의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회원"은 이를 원하지 않을 경우 가입신청 메뉴와 회원정보수정 메뉴에서 정보수신거부를 할 수 있습니다. 단, 정보 수신 거부한 "회원"에게도 제13조5항의 "연구원" 공지 메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제6장 손해배상 및 면책 제14조 (책임)
  1. "연구원"은 "서비스" 이용과 관련하여 "연구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한 "회원"에게 발생한 어떠한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2. "연구원"은 "서비스" 이용과 관련한 정보, 제품, 서비스, 소프트웨어, 그래픽, 음성, 동영상의 적합성, 정확성, 시의성, 신빙성에 관한 보증 또는 담보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제15조 (면책)
  1. "연구원"이 천재지변 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회원"에게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제16조 (관할법원)
  1. "서비스" 이용과 관련하여 소송이 제기될 경우 "연구원"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 또는 대한민국의 민사소송법에 따른 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합니다.
  2. 본 약관의 해석과 적용 및 본 약관과 관련한 분쟁의 해결에는 대한민국법이 적용됩니다.

부 칙
  1. 이 약관은 2008년 10월 6일부터 시행합니다.

개인정보수집 및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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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Collection구술테마 컬렉션/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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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일 / 1935.05.09

생산기관 서울대 면담자 김도민 면담자정보
검독자 김도민 면담 총시간 15시간 57분02초
조회수 1703 스크랩수 1
면담일(장소) [ 총5회 ]
  • 2015-01-29 (서울시 신림동 서울대학교 규장각 3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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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소개

  • 구술자료 상세
1. 과제개요
본 연구는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온 군인들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구술채록을 통해, 한국현대사에서 군이 담당한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대한민국 발전과 한국군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군과 국가안보, ‘한국군과 경제발전, ‘한국군과 민주화, ‘한국군과 인력양성, ‘한국군과 군사문화’ 등을 규명한다는 문제의식에 근거한다.
2. 구술개요
집안내력, 성장배경 그리고 유년기/결혼, 처갓집 그리고 국민학교 입학/국 학교 시절/해방 직후/부산사범학교 시절/학창 시절의 기억(1)/ 학창 시절의 기억(2)/ 학창 시절의 기억(3)/ 학창 시절의 기억(4)/ 학창 시절의 기억(5)/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1)/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2)/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과 동래의 모습/ 부산지역의 학교 모습/ 전쟁의 비참한 모습(1)/ 전쟁의 비참한 모습(2)/ 전쟁의 비참한 모습과 고등학교 입학/ 국제시장의 모습과 부산정치파동/ 전시의 기억/ 미국에 갔던 경험/ 육군사관학교 입교(1)/ 육군사관학교 입교(2) / 정규 육사/ 육군사관학교 입교와 기초군사훈련/ 기초군사훈련 경험/ 육군사관학교에서의 경험/ 육사 생도 시절 내무 생활에 대한 회고 (1)/육사 생도 시절 내무 생활에 대한 회고 (2)/육사 생도 시절 식생활에 대한 회고/육사 생도 시절 외출과 데이트/육사 생도 시절 일상생활에 대한 기억 (1)/ 육사 생도 시절 일상생활에 대한 기억 (2)/ 이강석의 육사 생활에 대한 회고/육사 2학년 시절에 대한 회고/이승만에 대한 회고와 평가 (1)/ 이승만에 대한 회고와 평가 (2)/ 육사 교육 체계에 대한 회고/4년제 육사 생도들의 자기 정체성/ 4년제 육사 생도들과 기성 장교들의 갈등/육사 응원가 제정과 5.16 전후 사정/육사 3학년 시절 전방 실습에 대한 회고/육사 졸업 전후시기에 대한 회고/ 기별 파동/육사 시절 기억에 남는 인물들/1958년 임관과 전방 상황/후생사업과 보급투쟁/수도사단에 부임/내무반의 관심병사, 문맹자, 난방/부대 보급의 실상/KLO 출신 선임하사와 군대 내 계급 문제/제1연대전투단 편성과 파주 배치/FTX 아이스캡 훈련/대대테스트 경험/비상훈련 경험과 미군의 성매매/1960년 3·15 부정선거/시멘트 막사 짓기/부대 교대와 한미 합동 사격대회 참가/사격 대회 대비 연습/한미 합동 사격대회의 경험(1)/한미 합동 사격대회의 경험(2)/전술 개념의 변화와 부대 재배치/1961년 5·16과 전방 생활/미국 유학 준비/ 생도 시절 기억나는 인물과 사건들/미 특수전학교 유학 준비 과정/1962년 도미(渡美) 여정 (1)/1962년 도미(渡美) 여정 (2)/1962년 도미(渡美) 여정 (3)/1962년 도미(渡美) 여정 (4)/미 특수전학교의 연원과 조직/미 특수전학교의 교육 방식 및 교육 내용/미국에 대한 인상과 평가 (1)/미국에 대한 인상과 평가 (2)/귀국 과정과 미국 여행 (1)/귀국 과정과 미국 여행 (2)/미국 경험에 대한 총평/보병학교 유격학부 교관으로 부임/동복유격대 훈련에 대한 회고 (1)/동복유격대 훈련에 대한 회고 (2)/유격학부 교관 시절의 이야기 거리/연세대학교 학군단 재직 시절/5사단으로 부임/월남 파병에 합류하게 된 경위/맹호부대 전사 장교로 근무/전사 작성의 과정/베트남 정세에 대한 회고/맹호 8호 작전 수행 과정
1회차 면담 / 2015-01-29 / 01:55:43
1. 면담개요
집안내력, 성장배경 그리고 유년기/결혼, 처갓집 그리고 국민학교 입학/국 학교 시절/해방 직후/부산사범학교 시절
2. 주요색인어
삼(3)구축국, 황국신민의 선서, 신사참배, 초등학교, 일본의 공출, 일본말 강요, 국민체조, 건포마찰, 미공보원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1-1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집안내력, 성장배경 그리고 유년기
  • 부친이 동래 명륜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가서 당시 신기술인 노면전차 기사로 취직하여 유학자금을 벌었음.
  • 모친께서는 여덟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포목상을 했음.
  • 1935년 5월 출생.
  • 어릴 때 동네 골목대장, 조선의 히틀러(조센 히트라)라 불릴 만큼 리더십이 있었음. 당시 일본과 독일이 동맹관계에서 독일과 히틀러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있었음.
00:00:01 ~ 00:12:39 동영상 재생
2. 결혼, 처갓집 그리고 국민학교 입학
  • 사관학교 시절 부인을 만났고 처갓집은 전주에서 큰 과수원을 하는 유복한 집안.
  • 동래가 일본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였으나, 부친이 특히 개척자 정신이 있어 일본유학을 갔음.
  •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세끼를 굶지 않은 정도의 생활수준.
  • 1942년 동래 제일 공립학교(제일 고등보통학교)를 시험쳐서 입학. 당시 국민학교는 9년 혹은 12년제도 있었음.
00:12:40 ~ 00:24:44 동영상 재생
3. 국민학교 시절(1)
  •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2등상, 개근상 받았고 해방 후 4학년 때 이후 우등상, 반장(급장)을 역임.
  • 일본 공출로 인하여 신발이 없어서 겨울에도 맨발로 등교. 학교 건물 들어가기 전에 발을 씻었음.
  • 싱가포르 함락기념으로 정구공을 나눠 줬음.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 매일 아침 학교에서 국민체조와 건포마찰을 했음. 조회 후에 황국신민의 선서를 함. 조선말을 쓰면 카드를 뺏고 방과 후 나머지 공부를 시켰는데 사실상 한, 두 시간 벌서는 것이었음. 교장은 예비역 대위, 선생님은 예비역 하사관.
  • 한 달에 한번 금정산 중턱에 있는 신사에 가서 참배.
  • 당시 사범학교와 사관학교를 중시했음.
00:24:45 ~ 00:39:51 동영상 재생
1-2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국민학교 시절(2)
  • 전쟁말기에 휘발유차는 전방으로 동원돼서 목탄차를 운영.
  • 학생들은 뒷산에 올라가서 송진을 캐서 공출로 냈음. 학교 운동장에는 감자, 호박 등을 심었음.
  • 1944년에는 방공호로 뛰어들어가는 훈련을 했음. 구술자의 아내도 철교폭격을 목격한 적이 있음.
  • 쌀, 담배 등은 배급제도가 시행됨.
  • 어렸을 때의 기억(구멍가게, 엿장수 등)
00:39:52 ~ 00:56:52 동영상 재생
1-3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국민학교 시절(3)
  • 일제시기 순사들이 무서웠고, 양반들이 사라졌음. 동네 큰 양반집들이 텅텅 비었음. 순사를 보면 잡아간다라는 생각만 들었음.
  • 노비도 사라졌음.
00:00:00 ~ 00:11:16 동영상 재생
1-4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해방 직후(1)
  • 해방이 된 다음 날, 사람들이 배급소의 곡물을 꺼내서 동래시장 마당으로 가져갔음. 그리고 불을 질러서 태워버렸음. 배급제도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음.
  • 문제는 배급이 사라졌다는 것. 그래서 탄 쌀을 몰래 가져다가 먹기 시작했음.
  • 총으로 암살당한 사람들도 있었음.
  • 건국준비위원회 청년단이 모여서 경찰서 습격을 하려 했으나, 가는 도중 경찰들의 습격을 받고 흩어지는 것을 목격.
  • 미군이 들어오면서 DDT를 살포했음. 미군부대에서 버리는 연통을 주워서 세숫대야로 쓰기도 함.
  • 해방 다음날에도 조선인교사들이 학교를 운영했음.
00:11:17 ~ 00:24:15 동영상 재생
2. 해방 직후(2)
  • 해방 후 구술자는 모친에게서 한글을 배웠음. 쉽게 배웠음.
  • 초량 기차역에서 유류탱크가 폭발하는 것을 목격.
  •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탄 적이 있는데, 당시 상을 탈만한 주제는 오직 국가건설이었음.
  • 해방 후 일본에 살던 교포들이 학교로 편입해왔는데, 공부 잘하고 돈 있는 집안 애들이었음. 나중에 서울대로도 많이 진학.
00:24:16 ~ 00:36:09 동영상 재생
1-5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부산사범학교 시절(2)
  • 통학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 기차가 올 때까지 부산 시내를 배회했음.
  • 당시 광복동에 있는 미국 공보원에 자주 갔음. 잡지도 보고, 영화도 볼 수 있었음. 미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음.
  • 부산 영도다리 쪽에는 번화가가 있었는데, 일본잡지를 판매했음. 일본잡지들도 많이 구경했음.
00:00:00 ~ 00:08:50 동영상 재생
2. 부산사범학교 시절(1)
  • 1948년 국민학교 졸업 후 부산사범학교로 진학. 교장 추천을 받아서 도학무국에 제출, 입학시험을 쳐서 붙었음.
  • 윤인구가 교장, 금수현(금난새 부친), 윤희상, 방덕수가 교사였음.
  • 금수현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음. 그래서 성을 김씨가 아닌 금씨로 했음.
  • 학교에는 미국에서 학용품 원조가 들어와서 좋은 학용품들을 받았음.
  • 동래에서 부산으로 통학할 때, 기차가 하루 두 편이 있었음. 그밖의 교통수단으로는 버스, 역마차, 혹은 미군 트럭에 몰래 올라타는 것이 있었음.
00:36:10 ~ 00:50:01 동영상 재생
2회차 면담 / 2015-02-03 / 03:18:21
1. 면담개요
학창 시절의 기억(1)/ 학창 시절의 기억(2)/ 학창 시절의 기억(3)/ 학창 시절의 기억(4)/ 학창 시절의 기억(5)/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1)/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2)/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과 동래의 모습/ 부산지역의 학교 모습/ 전쟁의 비참한 모습(1)/ 전쟁의 비참한 모습(2)/ 전쟁의 비참한 모습과 고등학교 입학/ 국제시장의 모습과 부산정치파동/ 전시의 기억/ 미국에 갔던 경험/ 육군사관학교 입교(1)/ 육군사관학교 입교(2) / 정규 육사/ 육군사관학교 입교와 기초군사훈련/ 기초군사훈련 경험/ 육군사관학교에서의 경험
2. 주요색인어
디디티(DDT), 부산사범학교, 동래고등학교, 국방경비대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2-1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학창 시절의 기억(1)
  • 미군이 DDT를 사용해 운동장에서 한국인을 소독
  • 구술자는 해방 이후 반장을 맡음
  • 반에는 덩치가 좋은 ‘어깨’가 한 명 있었음
  • 학생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어깨’와 겨뤄 죽다 살아남
  • 미군의 소독은 부끄러웠지만 거부감은 전혀 없었음
00:00:00 ~ 00:11:02 동영상 재생
2. 학창 시절의 기억(2)
  • 구술자의 집안은 포목장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을 구하러 다녔음
  • 구술자의 형님이 경상북도 경산까지 올라가 식량을 구함
  • 구술자는 부산사범학교에 입학함, 교장 이름 금수연
  • 입학시험에서 전 과목을 봤음
  • 영어 선생님이 당시 윤인구 교장선생님의 부인
  • 구술자는 역사 수업을 열심히 들었음
  • 점심은 대개 굶었음
  • 통학 거리가 멀어서 친한 사람들을 만들지 못했음
00:11:03 ~ 00:23:41 동영상 재생
3. 학창 시절의 기억(3)
  • 동래고등학교로 전학
  • 1948년 사범학교 입학, 1951년에 부산사범병설중학교로 개칭됨, 9월 학제로 바뀜
  • 1951년 부산사범병설중학 졸업, 당시 드문 남녀공학, 분반
  • 1948년 8월 15일, 구덕운동장에서 정부수립 기념행사
  • 1946년 전국적으로 국방경비대 하부조직이 창설됨
00:23:42 ~ 00:30:14 동영상 재생
4. 학창 시절의 기억(4)
  • 1946년 부산에 5연대가 창설되었다가 1947년에 3여단으로 확장됨
  • 3여단이 하기식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음
  • 대동청년단이 동래지역에 있었음
  • 통학 거리와 금전상의 문제로 집 근처 동래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됨
00:30:15 ~ 00:39:19 동영상 재생
5. 학창 시절의 기억(5)
  • 북한방송을 듣고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됨
  • 6월 26일부터 피난민을 목격하게 됨
  • 집을 구하지 못한 피난민들은 용두산 공원에서 신문과 박스를 사용해 생활함
  • 사범학교가 징발을 당해서 휴교하고 구술자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함
00:39:20 ~ 00:49:40 동영상 재생
6.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1)
  • 미군이 수영에 만드는 비행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함
  • 동래에서 수영 비행장까지 걸어갈 수 있었음
  • 중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인상을 썼음
00:49:41 ~ 00:57:28 동영상 재생
2-2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2)
  • 아르바이트를 하면 받는 전표로 돈을 바꿨는데, 한국인들이 50%나 할인해서 바꿔줌
  • 열흘 일해서 사전 하나 정도 살 수 있었음
  • 비행장에서 4,5개월 미군의 하우스보이(houseboy)로 일함
  • 해운대 탄약저장고에서 일함
00:00:00 ~ 00:08:56 동영상 재생
2.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과 동래의 모습
  • 민간인이 운영하는 고무신 공장에서 일함
  • 동래 지역의 여자들은 미군 PX물품이나 원조 물자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기도 함
  • 부산 지역에 전기 발전량이 부족해서 동래지역은 계속 호롱불을 사용함
00:08:57 ~ 00:20:19 동영상 재생
3. 부산지역의 학교 모습
  •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다보니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짐
  • 1951년에 학교는 산 중턱에 천막을 지고 운영되었음
  • 대학은 국제시장 옆 신사에 전시연합대학을 설치함
  • 부산사범학교에서 중학교를 졸업함
  • 국민학교는 전부 징발되서 군인 보충대가 됨
  • 동래고등학교는 육군종합학교가 됨
00:20:20 ~ 00:28:50 동영상 재생
4. 전쟁의 비참한 모습(1)
  • 동래에 정착한 피난민들은 시장에서 서로 물건을 사고 팜
  • 부산본역 플랫폼에서 대구 금달래의 비극적인 모습을 목격함
  • 비행장 끝에 철조망을 치고 미군과 양갈보들이 관계하는 모습을 목격함
00:28:51 ~ 00:38:22 동영상 재생
5. 전쟁의 비참한 모습(2)
  • 호주비행기가 이륙하다가 사고가 나는 장면을 목격함
  • 이승만이 모집한 국민방위군의 환경이 매우 열악했음
  • 국민방위군 사건 때 부정부패가 심각했음
  • 1951년 현충일에 이승만대통령이 현충일 행사에 참석한 것을 목격함
00:38:23 ~ 00:48:48 동영상 재생
6. 전쟁의 비참한 모습과 고등학교 입학
  • 보충대로 갈 사람들이 길바닥에서 씨받기를 함
  • 휴전 반대 데모를 하는데 만났던 군인들의 반응이 나빴음
  • 중학교에 복학해서 사범학교와 동래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룸
  • 어릴 적 일본인들이 쓴 책과 영웅전, 영웅 이야기를 자주 접하면서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함
  • 집안 환경의 영향을 받아 가까운 동래고등학교로 입학함
  • 학교에 다니면서도 국제시장에 있던 국제아동구호소에 야간 당번으로 아르바이트를 함
00:48:49 ~ 00:58:58 동영상 재생
2-3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국제시장의 모습과 부산정치파동
  • 국제시장에서 판매되는 범칙물자를 단속하기 위해 미군이 닥치기도 함
  • 국제시장에 없는 물건이 없었음
  • 1952년 이승만대통령의 5.26 부산정치파동 설명
00:00:00 ~ 00:09:12 동영상 재생
2. 전시의 기억
  • 이승만은 반이승만파에 대응하기 위해 여론을 움직임
  • 젊은 사람들은 비관 의식이 강했음
  • 전시에 미국으로 갔던 사람들이 5.16혁에서 공헌을 함
  • 휴전 직전에 서울에 한번 올라가봤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비극적이지 않았음
00:19:13 ~ 00:18:15 동영상 재생
3. 미국에 갔던 경험
  • 1950년부터 1966년까지 9천명의 장교단이 미국을 갔음
  • 1962년 미국에 갔을 때 영어를 못해서 벌어졌던 경험이 있음
  • 미국에서의 경험은 다녀온 사람들의 인생관을 바꿈
00:18:16 ~ 00:29:01 동영상 재생
4. 육군사관학교 입교(1)
  • 1954년에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7월에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됨
  • 어릴 적 읽었던 영웅이야기를 보면서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어함
  • 육군사관학교 교수들이 동래고등학교 선생을 부업으로 삼았는데, 육사에 입학 할 때 이들의 영향을 받음
  • 육사가 서울로 옮긴다는 소식과 부모님의 권유로 육사에 입학하게 됨
  • 개학 일주일 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친구들과 놀았음
00:29:02 ~ 00:38:41 동영상 재생
5. 육군사관학교 입교(2)
  • 육사 13기는 추가시험을 쳤는데, 구술자도 응시했다 면접에서 떨어짐
  • 장교 보충대에서 본 사람들이 장교 시험을 치를까 말까 고민하는 것을 목격함
  • 구술자는 4년제 정규 육사 생도이지만 1기~9기생은 정규 육사라고 할 수는 없음
00:38:42 ~ 00:47:54 동영상 재생
6. 정규 육사
  • 구술자는 정규 육사라는 프라이드가 강했음
  • 4기생 가운데 90%가 3년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음
  • 4기생은 총 249명이 들어감
  • 성적 미달로 떨어진 사람들을 제외하고 최종 임관한 사람은 198명이었음
00:47:55 ~ 00:56:05 동영상 재생
2-4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육군사관학교 입교와 기초군사훈련
  •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주일간 서울에 머무름
  • 신입생은 육사에서 7,8월 두달 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음
  • 입교 당일 철모, 소총 등 50여 가지 물품을 받음
00:00:00 ~ 00:09:25 동영상 재생
2. 기초군사훈련 경험
  • 기초군사훈련 첫날 분위기는 유연했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엄해지면서 훈련이 계속됨
  • 제식훈련을 하는 과정이 고됐음
00:09:26 ~ 00:17:34 동영상 재생
3. 육군사관학교에서의 경험
  • 점호할 때 혼난 경험이 있음
  • 드물게 훈련 기간에 나간 사람이 있음
  • 육사에서 학년이 높아질수록 지루함을 느끼게 됨
  • 육사에서는 모든 생도가 하나씩 부서활동을 해야했는데, 구술자는 학교 럭비 대표부 활동을 함
00:17:35 ~ 00:25:49 동영상 재생
3회차 면담 / 2015-02-13 / 03:06:22
1. 면담개요
육사 생도 시절 내무 생활에 대한 회고 (1)/육사 생도 시절 내무 생활에 대한 회고 (2)/육사 생도 시절 식생활에 대한 회고/육사 생도 시절 외출과 데이트/육사 생도 시절 일상생활에 대한 기억 (1)/ 육사 생도 시절 일상생활에 대한 기억 (2)/ 이강석의 육사 생활에 대한 회고/육사 2학년 시절에 대한 회고/이승만에 대한 회고와 평가 (1)/ 이승만에 대한 회고와 평가 (2)/ 육사 교육 체계에 대한 회고/4년제 육사 생도들의 자기 정체성/ 4년제 육사 생도들과 기성 장교들의 갈등/육사 응원가 제정과 5.16 전후 사정/육사 3학년 시절 전방 실습에 대한 회고/육사 졸업 전후시기에 대한 회고
2. 주요색인어
육군사관학교, 정규 육사, 육사 14기, 1956년 정부통령 선거, 하나회, 5·16 군사 쿠데타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3-1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1. 육사 생도 시절 훈련에 대한 회고
  • 육사를 지원한 동기에는 육사를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이 크게 작용했음.
  • 육사 입교 후에 받는 기초 군사훈련 막바지에는 30km행군이 있었음.
  • 30킬로미터 행군을 할 때는 육사를 출발하여 송파까지 행군함. 삼전도에서 병자호란과 관련한 역사 교육을 받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하룻밤 숙영을 했는데 환경이 무척 열악했음.
00:00:00 ~ 00:13:47 동영상 재생
2. 육사 생도 시절 훈련과 생활 여건에 대한 회고
  • 육사 생도 시절 시설은 대체로 매우 열악하였음.
  • 샤워도 짧은 시간밖에 할 수 없었고, 신발 등의 소모품도 품질이 매우 좋지 않았음.
  • 기초 군사훈련이 끝나고 1954년 9월부터 본격적인 교육과정이 시작됨. 이 시기에 이르러 육사가 비로소 정규 4년제로 충원.
00:13:48 ~ 00:23:12 동영상 재생
3. 육사 생도 시절 교육과정에 대한 회고 (1)
  • 당시의 육사는 생도부, 교수부, 그리고 지원부대로서 특별부대로 구성되어 있었음.
  • 문과, 이과 과목을 모두 교육받았는데 졸업 후에는 이학사 학위를 받았음.
  • 육사의 교육 과정은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사의 그것을 많이 가져왔으며, 교과목이나 교수들의 수준은 대체로 높은 편이었음.
00:23:13 ~ 00:31:53 동영상 재생
4. 육사 생도 시절 교육과정에 대한 회고 (2)
  • 수업 교재로는 미국에서 나온 영어 원서들이 많이 쓰였음.
  • 교육은 데일리 시스템으로 진행되어, 50분 정도 수업을 하고 나머지 5~10분 시간에 그 시간에 배운 것을 바로 간단한 시험을 통해 체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음.
  • 과목별 성적대로 1교반부터 6교반을 나누어 편성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학교에서 탈락하는 생도들이 나오기도 했음.
00:31:54 ~ 00:43:50 동영상 재생
5. 육사 생도 시절 내무 생활에 대한 회고 (1)
  • 생도 시절 학년별 모토로서 1학년은 복종, 2학년은 모범, 3학년은 실천, 4학년은 책임이 미덕으로 제시되었음.
  • 주로 2학년들이 1학년들에게 기합을 주었는데, 그 중에는 합리적인 수준을 넘은 괴롭힘도 있었음.
  • 2학년 중 특히 1학년들을 많이 괴롭힌 이들은 사이코라고 불렸음.
00:00:00 ~ 00:00:00 동영상 재생
6. 육사 생도 시절 내무 생활에 대한 회고 (2)
  • 2학년이었던 13기생들이 구두를 닦지 않은 것, 집합에 늦었다는 등의 이유로 1학년들에게 종종 기합을 주었음.
  • 3학년들은 한겨울에 냉탕에 들어가게 하는 기합을 주기도 했음.
  • 구술자는 54년 8월말부터 럭비부에 들어가서 활동함.
00:51:24 ~ 01:00:03 동영상 재생
3-2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육사 생도 시절 식생활에 대한 회고
  • 일반적인 식사는 밥과 국과 과일, 계란이 각각 하나씩 나오는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았음.
  • 식사 양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PX에서 먹거리를 많이 사먹었음.
  • 식사 방식은 미국 웨스트포인트와 비슷하게 전체가 동시에 식사를 시작하고 끝내는 방식이었음.
00:00:00 ~ 00:08:35 동영상 재생
2. 육사 생도 시절 외출과 데이트
  • 주말이 되면 1박 2일 외출이 주어졌음.
  • 외출을 나가면 주로 식당이나 극장을 방문했고, 청량리에서 귀대 트럭을 타고 육사로 돌아왔음.
  • 상급생 시절부터는 데이트도 했는데, 육사 생도들은 주로 이화여대생들을 많이 만났음.
00:08:36 ~ 00:17:06 동영상 재생
3. 육사 생도 시절 일상생활에 대한 기억 (1)
  • 단조롭고 엄격한 육사 생활 때문에 퇴교하거나 도망가는 생도들도 일부 있었음.
  • ‘청실홍실’이라는 제목의 라디오 드라마가 생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음.
  • 겨울에는 기름이 부족했기 때문에 난방을 충분히 하지 못했음.
00:17:07 ~ 00:28:12 동영상 재생
4. 육사 생도 시절 일상생활에 대한 기억 (2)
  • 1958년에 이한림 장군이 육사교장으로 부임하여 교내에 제1연병장을 만들었음. 생도들이 퇴계원의 밤섬에 가서 잔디를 뜯어와서 연병장에다가 실었음.
  • 매주 토요일에는 하기식과 퍼레이드를 했음.
  • 하기식을 겸하여 1주일 생활에 대한 청산점호도 이루어졌음.
00:28:13 ~ 00:37:55 동영상 재생
5. 이강석의 육사 생활에 대한 회고
  • 1956년에 이승만의 수양아들 이강석이 고관의 아들들 몇 명과 함께 육사 16기로 입학했음.
  • 이강석이 훈련을 받는 자세는 훌륭했지만 교과목을 따라갈 능력이 없어 과정을 끝내지 못하고 자퇴함.
  • 육사 생도들은 계급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출신이 대부분이었으므로 힘 있는 집안 출신의 생도들을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음.
00:37:56 ~ 00:46:47 동영상 재생
6. 육사 2학년 시절에 대한 회고
  • 2학년이 되면 여름에 광주 상무대의 전투병과학교들로 가서 군사훈련을 받았음.
  • 2학년 생도들은 보병학교, 포병학교, 기갑학교, 통신학교를 두 달 동안 돌면서 전술 훈련을 받았음.
00:00:00 ~ 00:00:00 동영상 재생
3-3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이승만에 대한 회고와 평가 (1)
  • 이승만은 육사에 와서 연설을 하곤 했는데 연설 내용의 스케일이 크고 인상적이었음.
  • 그러나 사관생도들 사이에서는 조봉암이 인기가 있었음,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생도들이 조봉암을 지지했을 것임.
  • 김창룡 암살은 이승만을 좋아하지 않는 정일권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함.
00:00:00 ~ 00:08:07 동영상 재생
2. 이승만에 대한 회고와 평가 (2)
  • 김창룡 암살 사건이 발생한 직후 석달 동안 외출 금지를 당했음.
  • 56년 선거 당시에 민간인 및 교수들과는 달리 생도들에게는 이승만을 지지할 것을 지시하는 간섭 행위는 특별히 없었던 것으로 기억됨.
  • 구술자가 육사에 4년간 있는 동안에는 3월 26일 이승만의 탄생을 기념하는 퍼레이드 연습이 매년 이루어졌음.
00:08:08 ~ 00:17:26 동영상 재생
3. 육사 교육 체계에 대한 회고
  • 구술자가 육사에 있는 동안 평균 10개월에 한 번 꼴로 교장이 바뀌었지만 그 때마다 교육 체계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음.
  • 1학년 1학기에는 고등학교 수준의 교과목을 교수했고, 1학년 2학기부터 대학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짐. 2학년이 되면 화학, 물리 등의 과목을 배웠으며, 3학년때부터는 병기학이 추가되었음.
00:17:27 ~ 00:23:31 동영상 재생
3-4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4년제 육사 생도들의 자기 정체성
  • 4년제 육사 출신의 생도들은 소위 ‘기성장교’ 들의 행태에 대한 불만이 컸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음.
  • 군의 부패는 1955년경에 극에 달했고, 정규 육사 1기들이 장교로 부임한 시기 이후부터 군의 부패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음.
  • 정규 육사가 출범한 이후 새롭게 만든 교가를 부르는 문제를 두고 기성장교들과 4년제 육사 출신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
00:00:00 ~ 00:09:00 동영상 재생
2. 4년제 육사 생도들과 기성 장교들의 갈등
  • 새로운 교가를 부르는 문제를 두고 육사 생도들이 저항한 끝에 뜻을 관철시킬 수 있었음.
  • 4년제 생도들은 스스로를 육사 1기, 2기 등으로 호칭했지만 이 역시 기성장교와의 갈등을 불러일으켜, 5.16이후 4년제 1기를 육사 11기로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봄.
  • 50년대 군부대에서는 장교들이 물품을 빼돌리는 행위가 흔했음.
00:09:01 ~ 00:17:09 동영상 재생
3. 육사 응원가 제정과 5.16 전후 사정
  • 육사 생도들은 새롭게 응원가를 제정하는 등 4년제 생도 출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나갔음.
  • 5.16에 대해서 일반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었지만 육사 생도들이 5.16을 지지하는 시가 행진을 함으로써 그 의구심이 해소되었음.
  • 전두환과 이상훈 등이 당시 생도들에게 시가 행진을 종용함.
00:17:10 ~ 00:29:48 동영상 재생
4. 육사 3학년 시절 전방 실습에 대한 회고
  • 육사 3학년 때는 전방지역 소대로 실습을 나감.
  • 당시 장교들이 농장을 일구면서 병사들을 개인적인 사역에 동원하는 경우가 무척 흔했음.
  • 장교들이 약과 음식 등을 빼돌리는 부정부패가 많았음.
00:29:50 ~ 00:37:02 동영상 재생
5. 육사 졸업 전후시기에 대한 회고
  • 14기 내부적으로는 지역별 파벌 같은 것은 특별히 존재하지 않았음.
  • 하나회가 본격적인 시작은 5.16 이후 육사 동창회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시도로부터 비롯됨.
  • 졸업 후 병과를 선택하는데, 당시 성적이 좋았던 생도들의 대부분이 공병에 지원하였음.
00:37:03 ~ 00:48:26 동영상 재생
4회차 면담 / 2015-02-17 / 03:49:25
1. 면담개요
기별 파동/육사 시절 기억에 남는 인물들/1958년 임관과 전방 상황/후생사업과 보급투쟁/수도사단에 부임/내무반의 관심병사, 문맹자, 난방/부대 보급의 실상/KLO 출신 선임하사와 군대 내 계급 문제/제1연대전투단 편성과 파주 배치/FTX 아이스캡 훈련/대대테스트 경험/비상훈련 경험과 미군의 성매매/1960년 3·15 부정선거/시멘트 막사 짓기/부대 교대와 한미 합동 사격대회 참가/사격 대회 대비 연습/한미 합동 사격대회의 경험(1)/한미 합동 사격대회의 경험(2)/전술 개념의 변화와 부대 재배치/1961년 5·16과 전방 생활/미국 유학 준비
2. 주요색인어
기별파동, OBC, 수도사단, 후생사업, 보급투쟁, 고문관, 페치카, 사단검수관, KLO, 임진강, 공릉천, 고등공민학교, 제1연대전투단, FTX, 아이스캡, 성매매, 기지촌, 나이트메어 훈련장, 대대테스트, 미1군단, 3·15 부정선거, 한미 합동 사격대회, 5·16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4-1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기별 파동
  • 11기생 백운택, 김성진은 육군본부로 가서 참모총장을 만나겠다고 한 일이 있었음.
  • 14기생 1명은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기별파동 운운한 것이 검열에 걸려 퇴교를 당하였음.
  • 기별 파동은 국가 부정부패를 없애겠다는 각오이고 이것이 5, 6공학국 성립의 사상의 밑바탕임.
00:00:00 ~ 00:10:52 동영상 재생
2. 육사 시절 기억에 남는 인물들
  • 생도대장 1명은 정부 비판도 하고 듣기 좋은 말로 생도들을 ‘석두’라고 놀리면서 가르침을 주었음. 나중에 주택공사 사장을 역임.
  • 훈육관 1명은 화장실 청소에 필요한 걸레를 생도들에게 가져오게 하여 별명이 ‘걸레’였음.
  • 생도대 편성 중에 간부진에 있던 생도들은 큰 인물감으로 보였는데 장래에 크게 진출하지 못함.
  • 박병권 교장은 청렴결백한 것으로 알려졌음. 이한림 장군도 청렴결백하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임.
00:10:53 ~ 00:19:27 동영상 재생
3. 1958년 임관과 전방 상황
  • 1958년 14기 179명이 졸업.
  • 구술자는 수도사단 제1연대에 가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우연히도 이곳에 배속됨. 참 명예스러움. 1연대는 뱃지도 다른 연대와 달랐음. 일반장교의 경우 성적순으로 수도사단, 1사단, 2사단에 배치하였음.
  • 임관 후 OBC에서 병과에 따른 부대전술을 4개월 동안 익히고 부대에 배치됨.
  • 1958년 10월 경에는 전쟁 분위기가 전방에 그대로 있었고 서로를 경계하느라 아무런 진지를 구축하지 않고 땅만 파서 참호만 만들어놓은 상태였음.
  • 전방은 MLR, GOP 1개 연대, COP, DMZ남단, MP 주둔하는 GP 1개 소대로 배치되어 있음.
  • 6개월마다 전후방 부대교대를 하였음.
00:19:28 ~ 00:31:52 동영상 재생
4. 후생사업과 보급투쟁
  • 당시에는 사단이 하나 움직이면 그에 딸린 가족과 장사하는 민간인들이 따라 움직여서 ‘사단 하나 움직이면 1개 군단이 움직인다’는 말이 있었음.
  • 1955년 육사 11기생들이 전방에 배치되고 보급투쟁을 치열하게 하였음. 보급투쟁은 군율에 철저히 따라 부대 내 관행적으로 존재하던 물자 빼돌리기나 트럭 전용을 막는 것임.
  •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자 1957년 송요찬 장군은 예하 장군들에게 후생사업 금지를 지시하였음. 이에 14기가 졸업할 때 송요찬을 14기 고문관으로 모셨음.
  • 당시 후생사업은 군대 보급 상황이 열악한 시절에 생계를 위한 부정부패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가족 없는 혈혈단신 입장으로 그런 사정을 몰랐음. 식당에서 된장, 고추장, 식용유 등을 가져가거나 숯을 구어서 팔거나 하는 정도였음.
00:31:53 ~ 00:44:07 동영상 재생
5. 수도사단에 부임
  • 후생사업의 내용 중에는 탱크 보급품인 휘발유와 각종 배터리를 파는 것도 있었음. 이런 후생사업은 1957년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지만 1958년에도 여전히 존재했음.
  • 구술자가 수도사단 제1연대 제11중대 제3소대장으로 감. 당시 수도사단사령부는 포천 이동면 심재마을에 위치함.
  • 내무반에는 무연탄을 때서 내무반을 덥히는 페치카가 설치돼 있었음.
00:44:08 ~ 00:50:47 동영상 재생
6. FTX 아이스캡 훈련(2)
  • 월롱산 250고지를 점령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공포판을 짊어진 연락병과 함께 산을 뛰어서 올라감. 고지에서 부대를 재편성해서 예비대가 되었는데 예비대는 이동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어서 괴로웠음. 추워서 불을 피울 수밖에 없었음.
  • 미군 탱크에 올라타서 이동하는데 추위 때문에 손이 쇳덩어리에 붙는 것이 고역이었음.
00:51:14 ~ 00:59:22 동영상 재생
7. 대대테스트 경험(2)
  • 대대 테스트에서 우일선 소대장을 맡음.
  • 훈련은 실전과 다름없이 진행되었으며 미군 훈련의 규모와 정밀한 체계에 감탄함.
00:10:07 ~ 00:21:27 동영상 재생
8. 비상훈련 경험과 미군의 성매매
  • 비상훈련 과정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절실히 느낌.
  • 대대 테스트에서 모범을 보여 군 사령부의 표창을 받음.
  • 미군들은 성매매를 자유롭게 했고 미군 훈련장 주변에는 성매매촌이 형성되었음.
00:21:28 ~ 00:33:29 동영상 재생
9. 1960년 3·15 부정선거
  • 3·15 선거 전에 소대원들을 투표 성향에 따라 ABCD로 나누어 관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큰 반발심을 느낌.
  • 3·15 선거 당일, 육사 출신들은 선거를 아예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 휴가를 내보냈지만 구술자는 전방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투표를 할 수 있었음.
  • 투표 현장에서 노골적인 투표 감시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함.
00:33:30 ~ 00:43:28 동영상 재생
4-2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내무반의 관심병사, 문맹자, 난방
  • 군대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그중 충청도에서 페치카 난방으로 담배를 말리던 기술자가 있었는데 그 사병이 전담으로 내무반 페치카를 관리하였음.
  • 고문관이라는 말은 미국 고문관과 소통이 안 되던 상황에서 만들어져 정신지체 등의 문제를 가진 사병을 지칭하게 되었음. 이들은 소대에 1, 2명씩은 존재했고 훈련에서 제외되고 내무반을 지켰음.
  • 문맹자는 30명 소대에 5, 6명씩 있었음. 연대에서 고등공민학교를 만들어서 문맹 사병과 지역 문맹자들에게 국어교육을 시켰음.
  • 구술자의 소대원들이 소대장을 위해서 드럼통 뚜껑을 이용하여 난방장치를 만들었는데 연기가 많이 나와 구술자의 숙소가 ‘오소리 잡는 집’으로 불리었음.
  • 당시 난방과 취사는 모두 나무를 연료로 했기 때문에 대대 이동 시에도 나무 차가 5, 6대씩 움직임. 겨울에 나무하러 국망봉에 오르면 나무하기 위해서는 800, 900고지 이상으로 올라가야 나무를 할 수 있었음.
  • 워커와 침낭 등 군 보급품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국제시장에서 미군 물품을 사야 했음.
00:00:00 ~ 00:11:50 동영상 재생
2. 부대 보급의 실상
  • 수도사단 사단장 한신 장군은 전술도 훌륭하고 청렴결백한 장군임. 보통 보급은 육본에서 하급부대로 순차적으로 내려오는데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심해서 시범적으로 수도사단이 선정되어 사단 차원에서 지방 구매를 해보도록 함. 대대에 소 4마리가 나왔는데 한신 장군이 불시점검하여 대대장이 곤욕을 치룬 일이 있음.
  • 사단의 보급을 책임진 사단검수관을 한 동기생들에 따르면 민간인들의 뇌물 공세와 물품 속여먹기가 심하였음.
00:11:51 ~ 00:22:06 동영상 재생
3. KLO 출신 선임하사와 군대 내 계급 문제
  • 구술자 소대에 KLO부대 출신 선임하사가 1명 있었음. 휴전 후 계급장 없는 KLO부대원들을 한국군으로 제대하기 위해 각 소대에 일정기간 복역시키고 제대시켰음. 그는 군율에서 예외적이고 사병들을 괴롭혔음.
  • 그런데 군대에서 계급에 따라 하급병들을 부려먹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구술자는 생각함. 전쟁 시 소대장과 분대장, 선임하사의 명령에 따라 사병들이 따라줘야 소대가 생존할 수 있음.
00:22:07 ~ 00:28:27 동영상 재생
4. 1959년 제1연대전투단 편성과 파주 배치
  • 1959년 수도사단 제1연대는 독립적 전투가 가능한 제1연대전투단이 되어 미 제1군단 예하로 파주 헤이리 근처 성동리에 배치됨. 그곳에 있는 미국군 부대가 만든 벙커를 휴전 이후 해병대가 인수하고 다시 그것을 육군이 인수한 것임. 이곳은 바로 통일전망대 오른쪽임.
  • 주둔지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교통호가 다 설치되어 있었음.
  • 성동리 마을에 민간인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땔감이 없어서 나무뿌리까지 갖다 땜. 그러다보니 몇 년 후 산이 완전히 벌거숭이가 됨.
  • 동기생 중 공릉천에서 간첩을 잡아 훈장을 탄 이가 있음. 그는 공비 침투에 관한 정보를 미리 듣고 강변에 대기하여 3명을 사살. 공비 침투 사살의 경우 대부분 미리 정보를 듣고 대기하다 사살한 것임.
00:28:28 ~ 00:40:13 동영상 재생
5. FTX 아이스캡 훈련(1)
  • 1960년 1월 FTX 아이스캡 훈련을 함. 남침 상황을 가정하고 일시 후퇴 후 반격하는 시나리오의 미군합동훈련임.
  • 훈련을 대비하여 땅을 파고 페치카를 설치하는 훈련을 하였으나 영하 10도의 기후에서 땅이 얼고 A텐트 보급도 열악하고 취사 상황도 열악해서 난방이 불가능하였음.
  • 미군 APC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것도 추위 때문에 고역이었음.
00:40:14 ~ 00:51:13 동영상 재생
6. 시멘트 막사 짓기
  • 1960년, 구술자의 부대 막사를 시멘트 막사로 다시 짓게 됨.
  • 시멘트 막사를 짓는 과정에서 많은 부정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부실 공사를 하게 됨.
00:43:29 ~ 00:51:25 동영상 재생
7. 부대 교대와 한미 합동 사격대회 참가
  • 전방으로 부대 교대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구술자는 중위인데도 불구하고 대대테스트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중대장으로 임명됨.
  • 구술자는 중위임에도 1959년 사격대회에서 1등한 전력이 있어 한미 합동 사격 대회에 참가하게 됨.
00:51:26 ~ 00:59:26 동영상 재생
8. 한미 합동 사격대회의 경험(1)
  • 구술자는 60년과 61년의 한미 합동 사격대회에 참가했고 60년 사격대회는 장충단 공원에서 열림.
  • 사격대회 시 이동 PX에서 커피와 도넛을 파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미국의 응원문화에서 문화 차이를 느낌.
00:11:39 ~ 00:20:06 동영상 재생
4-3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대대 테스트 경험(1)
  • 육사 시절 많은 생도들이 사상계를 읽었음.
  • 미군은 훈련을 철저하게 함. 미군은 대대 테스트를 중부전선 포천 산정호수 근처에 있는 나이트메어 훈련장에서 진행함.
  • 훈련장 진입을 기다리는 동안 포천 이동 노곡리 근처에서는 성매매가 이루어짐.
  • 노곡리를 지나쳐서 훈련장을 들어가는 길은 우남도로인데 이승만의 호를 딴 것임.
  • 여우고개 꼭대기는 화전민 촌이었음. 5·16이전에는 화전민촌이 봉우리마다 다 있었음. 5·16이후 화전민 청소를 함. 훈련 당시에는 화전민 촌에 넓은 공터가 있으니까 거기에 주둔을 하였음. 원래 1명당 1장씩 지급되어야 하는 A텐트 보급이 부족하여 소대끼리 또는 소대장과 중대장이 서로 맞서기도 하였음.
00:00:00 ~ 00:10:06 동영상 재생
4-4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사격 대회 대비 연습
  • 춘천의 2군단에서 사격대회가 있었을 때, 사격대회 한 달 전 춘천으로 가서 숙영하며 사격 대회 대비 연습을 함. 당시 쌀을 잘 먹지 못했던 춘천 주민들이 고구마, 감자와 쌀을 바꿔먹자고 요청함.
  • 5군단 사격장에서 열린 전군 사격 대회에서 구술자가 1등을 해서 챔피언이 됨.
  • 전방 GOP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할 때 북파공작원(HID)들이 북한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목격함.
00:00:00 ~ 00:11:38 동영상 재생
2. 한미 합동 사격대회의 경험(2)
  • 61년 사격대회는 문산에서 열림.
  •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은 사용하는 총에서부터 워낙 차이가 크게 났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연습을 통해 나름대로 우수한 성적을 거둠.
  • 구술자는 이 대회에서 종합 5등상을 받음.
00:20:07 ~ 00:29:28 동영상 재생
3. 전술 개념의 변화와 부대 재배치
  • 사격 대회 참가 후, 복귀 하니 대대 작전 과장으로 발령이 남.
  • 당시 전술 개념이 핵무기 사용에 대비해 MLR에서 FEVA 개념으로 변화하여 10년 이상 유지됨.
  • 구술자가 생각하기에 핵전쟁이 일어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
00:29:29 ~ 00:40:03 동영상 재생
4. 1961년 5·16과 전방 생활
  • 5·16 당시 구술자는 전방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잘 몰랐고 5·16 발발 후, 라디오로 소식을 들음.
  • 전방 군인들 사이에 처음에는 박정희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으나 육사 출신이라는 말에 모든 의구심이 해소되고 5·16을 지지하게 됨.
  • 장교들의 전방 생활은 아주 열악했고 거점 공사 때문에 업무도 무척 많았음.
00:40:04 ~ 00:52:25 동영상 재생
5. 미국 유학 준비
  • 구술자는 전방 생활에 지루함을 느껴 미국 유학을 알아보았으나 당시 미국 유학은 포병들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
  •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계기로 미국에 Special warfare center가 생기며 보병들도 미국 유학을 지원할 수 있게 됨.
00:52:26 ~ 00:59:50 동영상 재생
5회차 면담 / 2015-02-24 / 03:47:11
1. 면담개요
생도 시절 기억나는 인물과 사건들/미 특수전학교 유학 준비 과정/1962년 도미(渡美) 여정 (1)/1962년 도미(渡美) 여정 (2)/1962년 도미(渡美) 여정 (3)/1962년 도미(渡美) 여정 (4)/미 특수전학교의 연원과 조직/미 특수전학교의 교육 방식 및 교육 내용/미국에 대한 인상과 평가 (1)/미국에 대한 인상과 평가 (2)/귀국 과정과 미국 여행 (1)/귀국 과정과 미국 여행 (2)/미국 경험에 대한 총평/보병학교 유격학부 교관으로 부임/동복유격대 훈련에 대한 회고 (1)/동복유격대 훈련에 대한 회고 (2)/유격학부 교관 시절의 이야기 거리/연세대학교 학군단 재직 시절/5사단으로 부임/월남 파병에 합류하게 된 경위/맹호부대 전사 장교로 근무/전사 작성의 과정/베트남 정세에 대한 회고/맹호 8호 작전 수행 과정
2. 주요색인어
육군사관학교, 정규 육사, 콜론보고서, 사상계, 월남전, 베트남전쟁, 맹호부대, 맹호8호작전, 존에프케네디센터, 미 특수전학교, 심리전, 비정규전, 유격, 동복유격대, ROTC, 전사장교, 5사단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5-1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생도 시절 기억나는 인물과 사건들
  • 민병돈, 장세동, 허화평, 박정기 등의 인물들이 생도 시절 기억나는 인물들임.
  • 한미사격대회에서 만난 미군들이 중대장의 명령에 의해서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고 미국의 엄격한 질서 개념에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음.
  • 생도시절 《사상계》와《콜론보고서》를 접함.
00:00:00 ~ 00:11:20 동영상 재생
2. 미 특수전학교 유학 준비 과정
  • 당시 한국군의 미국 유학은 OAC와 OBC등이 주를 이루었음.
  • 62년 1월에 미국 포트 브랙에 있는 특수전학교로 4개월간 유학을 떠나게 됨.
  • 미 특수전학교를 수료한 장교들은 당시 막 창설된 공수여단에 배치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음.
00:11:21 ~ 00:20:00 동영상 재생
3. 1962년 도미(渡美) 여정 (1)
  • 한국에서 미군 장교 면접을 통과한 후 의료 검사를 거친 후 유학에 최종적으로 합격함.
  • 62년 1월 김포공항을 출발, 도쿄와 하와이를 거쳐 미국 본토로 감.
  • 한국에서 미 본토로 이동하는 과정 중에는 미군에서 제공한 군용기를 이용하였음.
00:20:01 ~ 00:28:31 동영상 재생
4. 1962년 도미(渡美) 여정 (2)
  • 김포공항에서 군용기를 타고 도쿄의 다찌가와 비행장에 내렸음.
  • 도쿄의 VOQ에서 이틀 가량을 머물면서 쉬었음.
  • 구술자, 구술자의 선배 한오경 대위를 포함 총 다섯명의 한국군 장교가 일행으로 함께했음.
  •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았으므로 도쿄 시내를 구경함.
00:28:32 ~ 00:35:33 동영상 재생
5. 1962년 도미(渡美) 여정 (3)
  • 도쿄에서 군용기를 타고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이동.
  •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 부인의 집에 머무름.
  • 화장실, 음식문화, 건물 등 미국의 풍물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음.
  •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금문교같은 건축물들이 인상적이었음.
00:35:34 ~ 00:51:12 동영상 재생
6. 1962년 도미(渡美) 여정 (4)
  • 샌프란시스코에서 특수전학교가 위치한 노스캐롤라이나 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함.
  • 기차 여행에서 솔트레이크 시티, 시카고, 워싱턴디씨 등을 거침.
  • 노스캐롤라이나의 포트 브랙에서 특수전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
00:51:13 ~ 00:59:37 동영상 재생
5-2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미 특수전학교의 연원과 조직
  • 특수전학교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장교로서 좋은 대우를 받았음.
  • 특수전학교는 포트 브랙의 존 에프 케네디 센터에 위치했고, 비정규전, 폭동 진압, 심리전 등에 대한 교육을 했음.
  • 교육 과정에서 심리전, 폭동진압, 비정규전 모두에 대해 종합적으로 배웠음.
00:00:00 ~ 00:08:35 동영상 재생
2. 미 특수전학교의 교육 방식 및 교육 내용
  • 교육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주입식으로 교육이 진행됨.
  • 월남, 중동, 유럽 등 각국의 장교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음.
  • 출국 전에 미국에서 만날 외국인들과 친하게 지내라는 당부를 받았음.
  •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미국으로부터 지원받는 것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음.
00:08:36 ~ 00:17:57 동영상 재생
3. 미국에 대한 인상과 평가 (1)
  • 4개월 교육 기간 동안 수업만 한 것이 아니라 웨스트포인트 육사, 뉴욕 등을 방문하는 시간도 있었음.
  • 뉴욕에 가서 도시의 광경을 보고서 많은 감명을 받았음.
  • 포트 브랙에서 오후 다섯시가 되었을 때 하이웨이를 지나가던 차들이 하기식에 맞추어 모두 멈추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음.
00:17:58 ~ 00:26:38 동영상 재생
4. 미국에 대한 인상과 평가 (2)
  • 포트 브랙에서는 BOQ에 머물렀고, PX와 식료품점 등의 편의 시설도 있었음.
  • 미국의 남성들이 여성들을 대할 때 보여주는 에티켓, 매너 등이 이채롭게 느껴졌음.
00:26:39 ~ 00:36:15 동영상 재생
5. 귀국 과정과 미국 여행 (1)
  • 교육 과정에서 만난 미군 대위, 선배 한오경 대위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샌디에이고까지 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됨.
  • 워싱턴에 가서 한국 대사관을 방문, 대사관 직원과 함께 워싱턴 시내를 구경함.
  • 워싱턴에서 5.16에 가담하지 않아 미국에 잠시 피신해 있던 한국군 장성들을 만남.
00:36:16 ~ 00:43:42 동영상 재생
6. 귀국 과정과 미국 여행 (2)
  • 워싱턴에서 출발하여 애틀랜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등지를 방문함.
  • 텍사스 엘파소에서 동행한 미군 대위의 지인 집에 머무르면서 미국인들의 풍족한 삶을 경험하기도 함.
  • LA에서 미국에 와 있던 이한림을 만나 식사를 함께함.
00:43:42 ~ 00:56:22 동영상 재생
5-3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미국 경험에 대한 총평
  • 미국의 물질 생활의 풍족함, 생산력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
  • 미국이 커다란 행운을 타고 태어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음.
  • 미국이 살기 위해서 먹는 나라라면 한국은 먹기 위해서 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음.
00:00:00 ~ 00:07:00 동영상 재생
2. 보병학교 유격학부 교관으로 부임
  • 당시 외국에 유학을 다녀온 장교는 교관으로 보직이 되게끔 정해져 있었음.
  • 광주 보병학교에 유격학부가 창설되면서 창설 멤버로 합류함.
  • 육사 선배인 장기오의 권유로 광주에 내려가서 동복유격대를 창설하였음.
00:07:01 ~ 00:17:37 동영상 재생
3. 동복유격대 훈련에 대한 회고 (1)
  • 동복유격대를 만들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올빼미 유격 과정을 창설하였음.
  • 산악 훈련, 로프 훈련, 정찰 훈련 등을 실시함.
  • 육참총장 김종오와 미군 고문관이 유격 시범을 보고 유격 훈련을 장교 필수 과정으로 만듦.
00:17:38 ~ 00:24:49 동영상 재생
4. 동복유격대 훈련에 대한 회고 (2)
  • 유격 훈련생들의 실습을 위해 광주와 화순 사이에 있는 너리재에 매복을 했다가 돌아오는 훈련을 했음.
  • 유격대에서 현재까지 사용하는 올빼미 휘장을 제정하는데 참여함.
  • 유격 훈련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를 느껴 위탁교육생으로 공수부대에 가서 교육을 받고 오기도 했음.
00:24:50 ~ 00:35:50 동영상 재생
5. 유격학부 교관 시절의 이야기 거리
  • 결혼하고 광주에 살림을 차렸는데, 당시 장교의 봉급이 충분한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음.
  • 봉급을 10개월 이상 쌀로 받은 적도 있었음.
  • 44회 전국체전에 전라남도 권총 사격대표로 출전함.
00:35:51 ~ 00:44:12 동영상 재생
6. 연세대학교 학군단 재직 시절
  • 유격학부 교관을 끝낸 후 보병학교에서 ROTC 2기생들을 가르치는 훈육관으로 근무하였음.
  • 전후방 교류 조치로 1964년 서울 연세대학교의 107학군단 훈육관으로 부임함.
  • 학군단 학생 중에 시위에 나간 사람이 있으면 직접 따라 나가서 문제가 생기지 않게 보호해 주기도 함.
00:44:13 ~ 00:56:04 동영상 재생
5-4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5사단으로 부임
  • 1965년에 5사단 사령부 작전참모부 소속의 대간첩작전장교로 부임.
  • 대간첩 장교로서 일상적으로는 아군의 매복 초소들을 순찰했고, 간첩이 침투하면 직접 작전 현장에 나서기도 함.
  • 당시 5사단은 과거에 근무했던 수도사단 등의 부대와 비교할 때 사격 등의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음.
00:00:00 ~ 00:11:35 동영상 재생
2. 월남 파병에 합류하게 된 경위
  • 5사단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월남전이 확대되고, 구술자는 월남에 갈 결심을 하게 됨.
  • 당시 월남에서 전사 장교로 일하던 육사 동기 홍성태가 자신의 후임 자리에 와 줄 것을 제의하자 이를 수락함.
  • 1966년 10월에 강원도 오음리에 훈련을 받은 후 베트남으로 출발.
00:11:36 ~ 00:18:45 동영상 재생
3. 맹호부대 전사 장교로 근무
  • 66년 10월에 바레트 호를 타고 월남으로 출발, 12월부터 보직 이수를 받아 임무를 시작함.
  • 맹호부대 작전참모부에는 전사과장(대위 혹은 소령) 1인과 그를 보조하는 전사장교(중위 또는 대위)와 선임하사가 있었음.
  • 각급 부대에서 올리는 전투상보가 전사를 서술하는 기본 자료였음.
00:18:46 ~ 00:27:45 동영상 재생
4. 전사 작성의 과정
  • 사단 차원의 작전, 연대 작전, 대대 작전 등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의 위계에 따라 자료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었음.
  • 전투에서 일어난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서술을 하려고 노력했음.
00:27:46 ~ 00:34:45 동영상 재생
5. 베트남 정세에 대한 회고
  • 고딘디엠 일족 등 월남의 상류층은 부정부패가 심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베트남인들은 호지명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음.
  • 미군이 베트남에서 사용한 써치 앤 디스트로이(search and destroy)전략은 베트남의 환경과 상황에 걸맞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음.
  • 한국군은 미군과는 다르게 전술책임지역을 설정하여 면을 조금씩 장악해가는 방식으로 작전에 임함.
00:34:46 ~ 00:47:02 동영상 재생
6. 맹호 8호 작전 수행 과정
  • 맹호 8호작전은 전술책임지역을 700평방 킬로미터 가량 넓히는 것을 목표로 했던 작전. 일명 송카우 작전이라고도 불림.
  • 점령이 완료된 후 현지 지도자들 중에서 면장과 이장을 세웠지만 바로 베트콩들에게 살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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