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페이지

Close
  • 개인정보수정
  • 탈퇴하기

회원가입

Close
  • Step 1. Terms of Use
  • Step 2. Input Information

이용약관

제1장 총칙 제1조 (목적)
  1. 이 약관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연구원")이 제공하는 모든 회원정보서비스(이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하 "회원")과 "연구원"이 "서비스"의 이용에 관한 사항을 전기통신 사업법 및 동 시행령과 "개인정보보호지침"에서 정하는 바를 준수하고 약정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제2조 (약관의 효력과 변경)
  1. 1. 이 약관은 서비스 화면에 게시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공시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합니다.
  2. 2.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약관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으며, 변경된 약관은 제1항과 같은 방법으로 통지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합니다.
  3. 3. 약관의 효력발생일 이후의 계속적인 서비스 이용은 약관의 변경사항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제3조 (약관 외 준칙)
  1. 이 약관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이 관계법령에 규정되어 있을 경우에는 그 규정에 따릅니다.

제2장 회원 가입과 서비스 이용 제4조 (이용계약)
  1. "서비스" 이용은 "연구원"이 허락하고 "회원"이 약관 내용에 대해 동의하면 됩니다.

제5조 (이용신청)
  1. 1. 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연구원" 소정의 가입신청 양식에서 요구하는 모든 이용자 정보를 기록하여 신청합니다.
  2. 2. 가입신청 양식에 기재된 이용자 정보는 실제 데이터로 간주됩니다. 실제 정보를 입력하지 않은 사용자는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제6조 (이용신청의 승낙)
  1. 1. "연구원"은 "회원"이 모든 사항을 정확히 기재하여 신청할 경우 "서비스" 이용을 승낙합니다. 단, 아래의 경우는 예외로 합니다.
    1. 가. 이용 신청 시 필요내용을 허위로 기재하여 신청한 경우
    2. 나. 사회의 안녕 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저해할 목적으로 신청한 경우
    3. 다. 기타 "연구원"이 정한 이용신청 요건에 맞지 않을 경우
  2. 2. 회원이 입력하는 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의 정보 외에 "연구원"은 "회원"에게 추가정보의 입력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기본정보: 아이디, 비밀번호, 비밀번호확인

제7조 (계약 사항의 변경 및 정보 보유/이용기간)
  1. 1. "회원"은 "서비스"이용 신청 시 기재한 사항이 변경되었을 경우, 온라인으로 수정을 해야 합니다.
  2. 2. "회원"으로 등록하는 순간부터 "연구원"은 "회원"의 정보를 보유 및 이용할 수 있습니다.
  3. 3. "회원"이 탈퇴하는 순간부터 "연구원"은 "회원"의 정보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연구원"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회원"이 탈퇴하는 순간부터 6개월간 "회원"의 정보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

제8조 (쿠키에 의한 개인정보 수집)
  1. 1. "연구원"는 사용자마다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자 개인용 컴퓨터에 쿠키를 전송합니다.
  2. 2. 사용자가 한번의 로그인으로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쿠키 수신을 허용해야 합니다.
  3. 3. 쿠키는 연구원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용자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4. 4. 사용자는 웹 브라우저에 있는 옵션기능을 조정하여 쿠키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쿠키 수신을 거부할 경우 로그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제3장 계약 해지 제9조 (계약해지)
  1. 1. "회원"은 웹 마스터(webmaster@aks.ac.kr) 메일을 통해서 회원정보처리에 관한 불만사항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2. 2. "회원"이 "서비스" 이용 계약을 해지 하고자 할 때는 본인확인이 가능하도록 아이디(이메일) 기재하여 전자우편으로 해지신청을 하거나 회원정보수정의 "회원탈퇴" 메뉴에서 탈퇴 신청을 해야 합니다.

제10조 (자격상실)
  1. 다음 각항의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연구원"은 사전통보 없이 이용계약을 해지하거나 기간을 정하여 서비스 이용을 중지할 수 있습니다.
  2. 1. 타인의 서비스 ID 및 비밀번호를 도용한 경우
  3. 2. 서비스의 안정적인 운영을 방해한 경우
  4.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내용을 고의로 유포시킨 경우
  5. 4. 회원이 국익 또는 사회적 공익을 저해할 목적으로 서비스이용을 계획 또는 실행하는 경우
  6. 5.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게시, 게재, 전자메일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전송 하여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한 경우
  7. 6. 수신자의 의사에 반하는 음란, 저속, 위협적인 내용이나 광고성 정보, 전자우편 등을 지속적으로 전송하는 경우
  8. 7. 정보통신설비의 오 작동이나 정보 등의 파괴를 유발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프로그램 등을 유포하는 경우
  9. 8. "연구원", 다른 회원 또는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우
  10. 9.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외부기관의 시정요구가 있거나 불법선거 운동과 관련하여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은 경우
  11. 10. 타인의 개인정보, 이용자ID 및 비밀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경우
  12. 11. "연구원"의 서비스 정보를 이용하여 얻은 정보를 "연구원"의 사전 승낙 없이 복제 또는 유통시키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13. 12. 전기통신 관련법령 등에 위배되는 경우
  14. 13. 본 약관을 포함하여 기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정한 이용조건 및 관계법령에 위반한 경우

제4장 책임 제11조 ("연구원"의 의무)
  1. 1."연구원"과 제휴를 맺은 사이트와 "연구원"의 사이트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연구원"은 "회원"의 정보를 제휴 사이트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공유를 위해 "연구원"은 "회원"의 컴퓨터에 쿠키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2. 2. "연구원"은 "서비스" 제공으로 알게 된 "회원"의 신상정보를 본인의 승낙 없이 제3자에게 누설, 배포하지 않습니다. 단,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합니다.
    1. -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전기통신기본법, 전기통신 사업법, 지방세법, 소비자보호법, 한국은행법, 형사소송법 등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2. - 통계작성/학술연구 또는 시장조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형태로 제공하는 경우
  3. 3. "연구원"은 "회원"의 전체 또는 일부 정보를 업무와 관련 된 통계 자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4. 4. "연구원"은 "서비스"가 계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부득이한 이유로 "서비스"가 중단되면 지체 없이 이를 수리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단, 천재지변, 비상사태, 시스템 정기점검 및 "연구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거나 중지할 수 있습니다.

제12조 (회원의 의무)
  1. 1. 아이디와 비밀번호의 관리에 대한 책임은 "회원"에게 있습니다.
  2. 2. "회원"은 자신의 아이디를 타인에게 양도, 증여, 대여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사용하게 하여서는 아니됩니다.
  3. 3. 자신의 아이디가 부정하게 사용된 경우, "회원"은 반드시 "연구원"에 그 사실을 통보해야 합니다.
  4. 4. "회원"은 게시물에 등록된 데이터를 이용한 영업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5. 5. "회원"은 "연구원"이 보내는 공지 메일을 수신해야 합니다.

제13조 (회원의 게시물)
  1. 1. 게시물이라 함은 "연구원"의 각종 게시판에 회원이 올린 글 전체를 포함합니다.
  2. 2. 회원이 게시하는 정보 (및 질문과 대답)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이나 문제는 전적으로 회원 개인의 판단에 따른 책임이며, "연구원"의 고의가 아닌 한 "연구원"은 이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습니다.
  3. 3. 회원의 게시물로 인하여 제3자의 "연구원"에 대한 청구, 소송, 기타 일체의 분쟁이 발생한 경우 회원은 그 해결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하고 "연구원"을 위하여 분쟁을 처리하여야 하며, "연구원"이 제3자에게 배상하거나 "연구원"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회원은 "연구원"에 배상하여야 합니다.
  4. 4. "연구원"은 "회원"의 게시물이 다음 각 항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사전통지 없이 삭제 합니다. 그러나 "연구원"이 게시물을 검사 또는 검열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1. 1) 제3자를 비방하거나 중상 모략하여 명예를 손상시키는 경우
    2. 2) 공공질서,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내용인 경우
    3. 3) "연구원"의 저작권, 제3자의 저작권등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인 경우
    4. 4) "연구원"에서 규정한 게시기간을 초과한 경우
    5. 5) 상업성이 있는 게시물이나 돈벌이 광고, 행운의 편지 등을 게시한 경우
    6. 6) 사이트의 개설취지에 맞지 않을 경우
    7. 7) 기타 관계법령을 위반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5. 5. "연구원"은 "회원"이 등록한 게시물을 활용해 가공, 판매, 출판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제5장 정보제공 제16조 (정보의 제공)
  1. "연구원"은 "회원"에게 필요한 정보나 광고를 전자메일이나 서신우편 등의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회원"은 이를 원하지 않을 경우 가입신청 메뉴와 회원정보수정 메뉴에서 정보수신거부를 할 수 있습니다. 단, 정보 수신 거부한 "회원"에게도 제13조5항의 "연구원" 공지 메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제6장 손해배상 및 면책 제14조 (책임)
  1. "연구원"은 "서비스" 이용과 관련하여 "연구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한 "회원"에게 발생한 어떠한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2. "연구원"은 "서비스" 이용과 관련한 정보, 제품, 서비스, 소프트웨어, 그래픽, 음성, 동영상의 적합성, 정확성, 시의성, 신빙성에 관한 보증 또는 담보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제15조 (면책)
  1. "연구원"이 천재지변 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회원"에게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제16조 (관할법원)
  1. "서비스" 이용과 관련하여 소송이 제기될 경우 "연구원"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 또는 대한민국의 민사소송법에 따른 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합니다.
  2. 본 약관의 해석과 적용 및 본 약관과 관련한 분쟁의 해결에는 대한민국법이 적용됩니다.

부 칙
  1. 이 약관은 2008년 10월 6일부터 시행합니다.

개인정보수집 및 이용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 개인정보 수집 · 이용 목적
  1.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은 회원가입 및 각종 서비스의 제공을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고 있습니다.

  1. 1. 서비스 제공에 관한 업무 이행
  2.   홈페이지 회원에게 정보 서비스 제공
  1. 2. 회원관리
  2.   회원제 서비스 이용 및 제한적 본인 확인제에 따른 본인확인, 개인식별, 가입의사 확인, 추후 법정 대리인 본인확인, 분쟁   조정을 위한 기록보존, 불만처리 등 민원처리, 고지사항 전달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1. 1. 필수항목 : 이메일 주소, 비밀번호 등
  2. 2.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정보들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 IP Address, 쿠키, 방문 일시, 서비스 이용 기록, 불량 이용 기록

개인정보의 보유 및 이용기간
  1. 회원 이용자의 개인정보는 회원가입일로부터 탈퇴시까지 보유 및 이용되며, 원칙적으로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되면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따라서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은 정보주체의 회원탈퇴 요청 시 그 회원의 개인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 동의거부권 및 동의 거부에 따른 불이익
  1. 가입자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대하여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단, 이에 대한 동의를 거부할 경우에는 회원가입이 불가능합니다.

개인정보 처리방침 다운로드

회원가입

Close

본인확인을 위하여 가입하신 이메일 계정으로 안내 메일이
발송되었습니다. 이메일 계정을 확인, 승인해주시길 바랍니다.

확인

마이페이지

Close

탈퇴되었습니다

확인

회원가입

Close

본인확인을 위하여 가입하신 이메일 계정으로 안내 메일이
발송되었습니다. 이메일 계정을 확인, 승인해주시길 바랍니다.

확인

Theme Collection - 구술테마 컬렉션/정당정치

  • 정당정치
  • 경제외교
  • 종교
  • 한국군
  • 건국60년
  • 원폭의 기억
QR CODE QR코드를 스캔해주세요

배상호 / 1929.03.27

배상호
구술자명 배상호 생산자 서울대
면담자 김태우 검독자 이동원
면담횟수 2 면담 총시간 03시간 59분51초
스크랩 0 조회수 952
면담일시 2011-01-14 / 2011-02-09
면담장소 구술자 자택/ 구술자 자택
간략 소개
과제 개요
본 연구는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온 군인들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구술채록을 통해, 한국현대사에서 군이 담당한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대한민국 발전과 한국군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군과 국가안보, ‘한국군과 경제발전, ‘한국군과 민주화, ‘한국군과 인력양성, ‘한국군과 군사문화’ 등을 규명한다는 문제의식에 근거한다.
구술 개요
공군 입대까지와 입대 후 한국전쟁 직전까지 받은 훈련 비행기 조정 훈련과 한국전쟁 초기 상황 한국전쟁 초기 비행기 전투 이야기 한국전쟁 시 후방으로 밀렸던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 조종과 정찰, 훈련 이야기 한국전쟁 후반기 티식스(T6)를 몰기까지 티식스(T6) 훈련과 에프오십일(F51) 임무출격 이야기 휴전 당시 두 가지 에피소드 조종사 임무 수행 이후 일과 생활 조종사 간의 관계와 철도 파괴 작전 관련 티에이시피(TACP) 활동 안 대위와 해방 후 훈련된 조종사 이야기 선배 조종사 이야기 건국호 구매운동과 비행기 월남, 월북 사건 월북사건과 공군 숙군과 북에 삐라 살포 관련 지리산 공비토벌 간접지원과 해인사사건의 내막 한국전쟁기 공군의 역할과 차단작전 폭격 백(100)회 출격과 조종사들의 폭격 과정과 거부 북한 야간 습격과 빨간 마후라 기원 관련 수원 전투비행대대장과 월남 시절 이야기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군 인식과 한국공군 중요성 강조
구술자명 배상호 성별 남자
관련분야
연도 활동내역
1950 한국공군정찰전대 근무
1951 공군 전투기 조종사 훈련 및 수료
1951~1953 6.25참전
1955~1958 공군전투비행 대대장
1967 월남전 참전
1969 공군준장
1971 공군 본부 감찰감
1975 공군소장 진급
1976 공공군 군수 사령관
구술자명 김태우 관련분야 한국현대사
현재소속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도 활동내역
2000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사학 부전공)
200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 졸업
2005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사
2008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박사 졸업
2009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1회차 면담 / 2011-01-14 / 02:06:03
구술개요
공군 입대까지와 입대 후 한국전쟁 직전까지 받은 훈련 비행기 조정 훈련과 한국전쟁 초기 상황 한국전쟁 초기 비행기 전투 이야기 한국전쟁 시 후방으로 밀렸던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 조종과 정찰, 훈련 이야기 한국전쟁 후반기 티식스(T6)를 몰기까지 티식스(T6) 훈련과 에프오십일(F51) 임무출격 이야기 휴전 당시 두 가지 에피소드 조종사 임무 수행 이후 일과 생활 조종사 간의 관계와 철도 파괴 작전 관련
주요 색인어
제이오씨(Joint Operation Center, JOC) 에프오십일(F51) 티식스(T6) 엘포(L4) 엘파이브(L5) 미그15 한국전쟁 공군 미군사고문
구술 자료 상세 목록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1. 공군 입대까지와 입대 후 한국전쟁 직전까지 받은 훈련
    해방 전에 대구에서 태어났는데 군사기지 징용을 했음. 해방된 다음해에 친척 덕분에 비행기 탈 기회가 있었음. 부모님은 대구에서 장사를 했음. 수창소학교를 졸업했음. 1949년 2월에 공군에 입대함. 김포에서 훈련 받다가 여의도로 감. 공군 모집 포스터가 난 걸 보고 지원했음. 같이 입대한 사람이 한 300명 정도 됨. 49년에 비행기 조종을 위해 26명이 훈련을 시작했다가 50년에 11명으로 줄어듦. 자질 없는 조종사를 도태시킴. 50년 초에 11명이 비행기를 타는 훈련생이었는데 6.25가 발발함. 훈련 비행기종은 L4였는데 주로 연락이나 정찰용이었음.
00:17:55 ~ 00:29:39
2. 비행기 조정 훈련과 한국전쟁 초기 상황
    엘포(L4)와 엘파이브(L5)를 이용해서 훈련한 이야기. 비행기를 한번 타면 보통 5, 10분 정도 연료밖에 없고 비행기 대수도 적어서 한달 받을 훈련을 1년동안 받았음. 엘포와 엘파이브는 20대 정도 있었음. 이 20대가 한국전쟁 시 한국공군 전력의 거의 전부였음. 1949년 공군이 이 육군 항공대에서 독립된 이야기. 비행기 훈련 때는 미군고문관도 연관되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훈련받은 선배들이 한국 조종사를 훈련시켰음. 구술자는 미군한테 훈련 받은 기억은 없음. 전쟁 전까지 50여시간 탔음. 이 비행기는 무기장착이 불가능했음. 북한군 야크기를 봤는데 비행기 공습이 처음이라 당황했던 에피소드. 한국전쟁 발발시 훈련생 신분이었음.
00:29:40 ~ 00:43:59
3. 한국전쟁 초기 비행기 전투 이야기
    전쟁이 발발했을, 발발직후에 기지가 폭격당한 이야기. 맥아더 장군을 보진 못했음. 대한민국의 공군이 오늘날 이렇게 육성된 거는 일제시대 군대지만 거기 갔다 온 사람들과 미군의 군사원조로 전투기를 준 덕분이었음. 수원비행장에서 구술자 본인은 야크기 공격을 받지 않았음. 여의도 상공에서 미군 비행기 에프팔십이(F82)의 뛰어난 성능 이야기. 미그 십오(15)하고 에프 팔십육(F86)의 성능 차이 설명.
00:44:00 ~ 00:53:30
4. 한국전쟁 시 후방으로 밀렸던 이야기
    엘포와 엘파이브 비행기 모두 복좌 구조였음. 남쪽으로 피난갈 때 본인은 기차를 타고 고참들이 비행기 타고 내려갔음. 후퇴해서 영천까지 갔다가 밀려서 대구 경마비행장으로 왔음. 엘포(L4) 경마장. 티식스(T6), 에프오십일(F51)이 동촌비행장. 엘파이브(L5)가 동명비행장에도 있었음. 구술자는 경마비행장에 있었음. 주로 중부전선 정찰활동을 했음. 인민군이 탱크의 기관포를 쏘지는 않았음. 정찰은 주로 메인도로 위주였음.
00:00:01 ~ 00:11:30
5.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 조종과 정찰, 훈련 이야기
    공군부대는 대구에 있었음. 정찰전대에 소속됐음. 일련번호는 없었음. 일본에 가서 에프오십일(F51)을 이다즈끼에서 인수 해왔던 이야기. 하루 만에 가져온 것을 대단하게 여겼음. 정찰기 탔을 때 후방석에 앉아서 수루탄을 인민군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던졌음. 51년 2월부터 여의도에서 교과과정을 가지고 훈련을 하기 시작했음. 전투부대는 미군하고 같이 미군육일사륙(6146)부대하고 같이 평양까지 올라갔음. 에프오십일 비행기는 조종 미숙으로 사고가 많이 났음. 그래서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았음.
00:11:31 ~ 00:20:20
6. 한국전쟁 후반기 티식스(T6)를 몰기까지
    1년도 8월달에 오퍼레이션 레디 인스펙션(Operation Ready Inspection) 오알아이(ORI), 작전검열을 받고 비행기도 미국에서 더 많이 받게 됨. 북진할 때 에프오십일 주무기는 네이팜 탄이 아니라 로케트와 폭탄이었음. 미군을 많이 썼으나 한국 비행사들은 우군이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쓰지 않음. 민간인 지역을 불태우는 소각작전을 하지 않았음. 5인치 로켓트 위력이 강했음. 오십일(51)년 유(6)월부터 사천기지에서 티식스(T6)를 몰았음.
00:20:21 ~ 00:31:04
7. 티식스(T6) 훈련과 에프오십일(F51) 임무출격 이야기
    한국전쟁 초창기에 한국공군의 전력은 보잘것없었으나 점차 일본으로부터 군원을 받아서 강화됐음. 사천기지에서 티식스를 맡으면서 이제 기종전환 훈련을 단계적로 받았음. 선배들이 처음에 교관으로 가르쳐줬음. 오십일(51)년 시(10)월부터 에프오십일(F51)을 본격적으로 몰기 시작했고 주요 임무는 목표물 찾아 공격하고 오는 것이었음. 임무출격 횟수 관련 이야기. 북한군이 밥해먹는 연기를 보고 공격했음.
00:31:05 ~ 00:41:15
8. 휴전 당시 두 가지 에피소드
    자동차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으면 휴전협정상 공격하면 안됐지만 공격을 한 적이 있었음. 제이오씨(JOC)에서 확인하여 처벌을 받으려 했으나 당시 미군과 이승만 대통령의 휴전 관련한 입장차이로 이틀간 비행중지만 당하고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음. 미그기를 맞닥뜨렸다가 재빠른 회피동작으로 살아남았으며 당시 컨츄레일(contrail)이라고 제트기가 고공에 뜰 때 상황 설명.
00:41:16 ~ 00:51:20
9. 조종사 임무 수행 이후 일과 생활
    출격시 목표물 확인은 새벽이 제일 좋고, 정밀한 지도를 가기 때문에 목표물 조준이 정확함. 임무수행 이후 하루 일과는 대부분 술먹으러 갔음. 나창준 선배가 해주 임무 수행중에 죽은 이야기를 하면서 조종사 생활이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불안한 삶임을 토로함. 미군들은 장교 클럽에서 술 먹고 총 쏘는 싸움이 많이 벌어졌음.
00:51:21 ~ 01:01:25
10. 조종사 간의 관계와 철도 파괴 작전 관련
    비행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조종사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음. 52년 2월 달에 장교로 임관하여 강릉 갔음. 사관학교 생활은 따로 없었음. 계급이 중시되기보다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선후배와 친구 와 전우 사이 관계였음. 낮에 철도 교량을 부숴놓으면 밤 사이 전부 복구가 됐음. 열 번 중에 두세번 정도 차단작전을 했음. 타케트는 유엔 작전본부인 제이오씨(JOC)가 조인트 오퍼레이션 센터(Joint Operation Center)에서 명령을 하달 받았음.
01:01:26 ~ 01:12:33

2회차 면담 / 2011-02-09 / 01:53:48
구술개요
티에이시피(TACP) 활동 안 대위와 해방 후 훈련된 조종사 이야기 선배 조종사 이야기 건국호 구매운동과 비행기 월남, 월북 사건 월북사건과 공군 숙군과 북에 삐라 살포 관련 지리산 공비토벌 간접지원과 해인사사건의 내막 한국전쟁기 공군의 역할과 차단작전 폭격 백(100)회 출격과 조종사들의 폭격 과정과 거부 북한 야간 습격과 빨간 마후라 기원 관련 수원 전투비행대대장과 월남 시절 이야기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군 인식과 한국공군 중요성 강조
주요 색인어
유엔공군, 한국전쟁, 공비토벌, 숙군, 빨간마후라, 베트남전쟁
구술 자료 상세 목록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1. 티에이시피(TACP) 활동
    공군이면서 육군에 육개월 파견 나갔음. 전폭기 폭격 유도를 위해 오사단 십오사단 오피(OP)에 나갔음. 날아오는 비행기에 대한 목표물 확인 작업을 하는 택티컬 에어 컨트롤 파티(Tactical Air Control Party, TACP)에서 활동했음. 통신병 하나 데리고 산에 가서 비행기와 교신하여 목표물을 확인시킴. 통신병은 계속 한명이 같이 활동했음.
00:00:15 ~ 00:08:37
2. 안 대위와 해방 후 훈련된 조종사 이야기
    산 위에서 인민군들 초소나 진지의 목표물을 타켓으로 배정받았음. 목표물을 백퍼센트 조종사들이 맞추지는 못했음. 당시 포사령관 안대위와 친했는데 오일육 때 광주에서 살인사건 났을 때 죽었음. 기존에 다섯명 정도가 이천 시간 이상 비행을 했다는 사실은 잘못된 것임. 장덕창과 장성환 씨 정도가 이천 시간 이상 비행했음. 김정렬은 비행시간 별로 없었음. 이근석은 일제 강점기 특공대 출신으로 비행시간이 많은 편이었음. 일제시기 활동했던 장군들이 미국에 가서 비행기를 받아올 수 있었음. 김영환도 초창기에 비행기를 일본에 가서 미국 비행기를 인수받아 온 사람임.
00:08:38 ~ 00:19:55
3. 선배 조종사 이야기
    최용덕은 중국 공군 출신인데 비행기를 별로 많이 안 탔음. 여의도에 처음 비행기를 타러 갔을 때 김영환, 김신, 장성환 세 사람이 비행 중대장이었고 이근석 장군이 단장이었음. 각각 인물들의 성격은 민항 출신은 점잖은 반면 군대 출신은 과격한 사람이 많았음. 전투중에도 상관과 부대원이 총 겨누며 싸우기도 했음. 왜냐하면 공군은 육군과 달리 선후배 간에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음. 김영환과 김신은 전투기 조종사인 반면 장선환 장군은 수송기 조종사 지휘관이었음.
00:19:56 ~ 00:29:38
4. 건국호 구매운동과 비행기 월남, 월북 사건
    애국기 헌납운동이라는 건국호 도입 관련하여, 49년 9월에 이승만 정권이 안정되어 가고 있을 때 공군의 필요성이 커져가고 있었지만 인식이 잘 바뀌지 않았음. 당시 건국호 구입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졌고 정부에서 티식스(T
  • 6) 건국호 열(10)대를 확보함. 그래서 10월 1일에 공군으로 독립함. 50년 4월에 아이엘 텐(IL
  • 10)을 가지고 북한에서 이건순이 귀순함. 이후 이건순을 구술자가 데리고 있었는 또다시 북으로 넘어갈까봐 비행기를 태워주지 않았음. 한국전쟁 때 노금석이 미그십오를 타고 넘오왔는데 이때는 바로 한국공군에 안 오고 미국으로 갔음. 미국이 미그 십오기에 대한 분석에 관심이 많았음. 53년 4월에 김성배 대위가 에프오십일을 가지고 월북했는데 이유는 동료 사이에서 천대받는 것이었음.
00:29:39 ~ 00:38:41
5. 월북사건과 공군 숙군과 북에 삐라 살포 관련
    육이오 전에 발생한 연락기 월북사건은 완전히 공산주의 사상에 따른 사건이었음. 일본군대 출신인데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된 사람들이었음. 박용호와 백 누구였음. 박용호는 대우를 잘 받았는데도 사상 때문에 넘어갔음. 사십구년 가을에 조종사들이 김창룡에게 11명 붙들려 가는 숙군이 공군에도 있었음. 동기생 중 박용만이 끌려 갔다가 나왔고 끌려갔던 10명 정도도 모두 돌아왔음. 삐라를 북에 살포하는 과정 설명.
00:38:42 ~ 00:49:08
6. 지리산 공비토벌 간접지원과 해인사사건의 내막
    지리산 공비 토벌 당시 연락기를 이용하여 육군 사령관을 태워주는 정도의 간접지원을 했음. 해인사 공격은 실제 팔만대장경 보호를 위해서였는지를 모르지만 실제로는 해인사 주변 인민군이 왔다갔다 해서 그것을 공격한 것이었음. 오알아이(ORI) 때문에 출동을 했으나 해인사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지는 않았음.
00:49:09 ~ 00:59:08
7. 한국전쟁기 공군의 역할과 차단작전 폭격
    유엔공군이 한국전쟁 시 낙동간 전선에서 북진과 휴전선 확보에 도움을 많이 줬음. 유엔공군의 낙동간 전선 융단폭격이 전장을 한국에 유리하게 했음. 그럼에도 육군은 공군의 역할을 무시했음. 공중화력지원이 매우 중요함. 원산 사리원 해주 평양 평강 등에서 자주 활동했음. 비행기가 뜨면 원산과 평양의 모습은 조용했음. 51년 하반기 주로 차단작전에서 폭격대상이 매일 바뀌었음. 미공군은 비이십육기로 매일 사진을 찍으러 다녔음.
00:00:01 ~ 00:11:35
8. 백(100)회 출격과 조종사들의 폭격 과정과 거부
    미그기와 마주치념 도망을 갔는데 당시 조종사는 알 수 없음. 100회 출격을 알고 있었고 매일 출격 기록이 나왔음. 100회 출격 때 축하와 꽃다발을 받았음. 100회 출격 후 휴가를 줬고 일본의 창정비로 가서 장비를 얻어가지고 왔음. 비행기는 매일 배정됐음. 당시 비행하는데 죽음의 공포를 별달리 생각지 않았음. 비행 거부 사례는 당시 한국군에 없었음. 비행기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여 돌아오는 경우는 있었음. 폭격라인을 넘어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경우 폭탄은 모두 바닷가에 쏟아놓고 돌아옴.
00:11:36 ~ 00:22:38
9. 북한 야간 습격과 빨간 마후라 기원 관련
    북한 공군의 피오투(PO
  • 2) 경폭격기의 야간 습격 사례는 없었음. 육이오 휴전 전까지는 마후라 종류가 여러 가지 있었음. 마후라는 비행복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것이었음. 전후 한참 후에야 공군에서 유행이 됐고 이후에 빨간 마후라 영화에서 제목으로 쓰임. 빨간 마후라 기원은 각자마다 달랐음. 비행 죽음에 대한 공포로 내무반에 있지 않고 강릉 시내에서 조종사들은 대부분 술을 마셨음. 오십오(55)년부터 오십팔(58)년까지 전투비행대대장을 할 때 에프 팔십육(F
  • 86) 세이버(Sabre) 기를 몰았음
00:22:39 ~ 00:33:42
10. 수원 전투비행대대장과 월남 시절 이야기
    세이버기는 이전까지 몰던 프로펠러 식과 작동법이 달라서 미 공군에 가서 교육을 보통 받는데 구술자는 한국 오산에서 미국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았음. 수원에서 한국공군의 최초 에프 팔십육(F
  • 86) 부대가 만들어졌음. 주로 미그기 대항 위한 훈련이었음. 1967년에 월남에 주월사령관 특별보좌관으로 가서 전투부대 공군 파경 전투부태 창설준비를 했음. 베트남에서 물자 이동은 사십육(C
  • 46) 수송기로 했음. 공군이 공식적으로 참전했으나 전투병력만 파견되지 않았음. 월남에서 쪼롱이라는 동네는 중국촌으로 팔십 퍼센트 이상이 베트콩이었음.
00:33:44 ~ 00:43:28
11.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군 인식과 한국공군 중요성 강조
    비행장 구술자 사무실까지 베트콩이 들어왔었음. 베트콩은 미군보다 한국군을 더 두려워했는데 왜냐하면 베트콩을 잡으면 그 해골을 차고 다녔기 때문임. 반면 월남사람들은 한국사람을 좋아했는데 아마 기술자들이 월남에 많이 가서였을 수 있음. 일본인과 프랑스인에 대한 감정이 월남인들은 좋지 않았음. 78년도에 소장으로 전역함. 한국 공군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재인식 해주길 바람.
00:43:29 ~ 00:54:40

이용문의

Close

는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름
e-mail e-mail 주소를 입력하십시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