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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조 (약관 외 준칙)
  1. 이 약관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이 관계법령에 규정되어 있을 경우에는 그 규정에 따릅니다.

제2장 회원 가입과 서비스 이용 제4조 (이용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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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조 (계약 사항의 변경 및 정보 보유/이용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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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계약 해지 제9조 (계약해지)
  1. 1. "회원"은 웹 마스터(webmaster@aks.ac.kr) 메일을 통해서 회원정보처리에 관한 불만사항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2. 2. "회원"이 "서비스" 이용 계약을 해지 하고자 할 때는 본인확인이 가능하도록 아이디(이메일) 기재하여 전자우편으로 해지신청을 하거나 회원정보수정의 "회원탈퇴" 메뉴에서 탈퇴 신청을 해야 합니다.

제10조 (자격상실)
  1. 다음 각항의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연구원"은 사전통보 없이 이용계약을 해지하거나 기간을 정하여 서비스 이용을 중지할 수 있습니다.
  2. 1. 타인의 서비스 ID 및 비밀번호를 도용한 경우
  3. 2. 서비스의 안정적인 운영을 방해한 경우
  4.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내용을 고의로 유포시킨 경우
  5. 4. 회원이 국익 또는 사회적 공익을 저해할 목적으로 서비스이용을 계획 또는 실행하는 경우
  6. 5.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게시, 게재, 전자메일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전송 하여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한 경우
  7. 6. 수신자의 의사에 반하는 음란, 저속, 위협적인 내용이나 광고성 정보, 전자우편 등을 지속적으로 전송하는 경우
  8. 7. 정보통신설비의 오 작동이나 정보 등의 파괴를 유발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프로그램 등을 유포하는 경우
  9. 8. "연구원", 다른 회원 또는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우
  10. 9.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외부기관의 시정요구가 있거나 불법선거 운동과 관련하여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은 경우
  11. 10. 타인의 개인정보, 이용자ID 및 비밀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경우
  12. 11. "연구원"의 서비스 정보를 이용하여 얻은 정보를 "연구원"의 사전 승낙 없이 복제 또는 유통시키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13. 12. 전기통신 관련법령 등에 위배되는 경우
  14. 13. 본 약관을 포함하여 기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정한 이용조건 및 관계법령에 위반한 경우

제4장 책임 제11조 ("연구원"의 의무)
  1. 1."연구원"과 제휴를 맺은 사이트와 "연구원"의 사이트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연구원"은 "회원"의 정보를 제휴 사이트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공유를 위해 "연구원"은 "회원"의 컴퓨터에 쿠키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2. 2. "연구원"은 "서비스" 제공으로 알게 된 "회원"의 신상정보를 본인의 승낙 없이 제3자에게 누설, 배포하지 않습니다. 단,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합니다.
    1. -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전기통신기본법, 전기통신 사업법, 지방세법, 소비자보호법, 한국은행법, 형사소송법 등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2. - 통계작성/학술연구 또는 시장조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형태로 제공하는 경우
  3. 3. "연구원"은 "회원"의 전체 또는 일부 정보를 업무와 관련 된 통계 자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4. 4. "연구원"은 "서비스"가 계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부득이한 이유로 "서비스"가 중단되면 지체 없이 이를 수리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단, 천재지변, 비상사태, 시스템 정기점검 및 "연구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거나 중지할 수 있습니다.

제12조 (회원의 의무)
  1. 1. 아이디와 비밀번호의 관리에 대한 책임은 "회원"에게 있습니다.
  2. 2. "회원"은 자신의 아이디를 타인에게 양도, 증여, 대여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사용하게 하여서는 아니됩니다.
  3. 3. 자신의 아이디가 부정하게 사용된 경우, "회원"은 반드시 "연구원"에 그 사실을 통보해야 합니다.
  4. 4. "회원"은 게시물에 등록된 데이터를 이용한 영업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5. 5. "회원"은 "연구원"이 보내는 공지 메일을 수신해야 합니다.

제13조 (회원의 게시물)
  1. 1. 게시물이라 함은 "연구원"의 각종 게시판에 회원이 올린 글 전체를 포함합니다.
  2. 2. 회원이 게시하는 정보 (및 질문과 대답)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이나 문제는 전적으로 회원 개인의 판단에 따른 책임이며, "연구원"의 고의가 아닌 한 "연구원"은 이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습니다.
  3. 3. 회원의 게시물로 인하여 제3자의 "연구원"에 대한 청구, 소송, 기타 일체의 분쟁이 발생한 경우 회원은 그 해결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하고 "연구원"을 위하여 분쟁을 처리하여야 하며, "연구원"이 제3자에게 배상하거나 "연구원"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회원은 "연구원"에 배상하여야 합니다.
  4. 4. "연구원"은 "회원"의 게시물이 다음 각 항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사전통지 없이 삭제 합니다. 그러나 "연구원"이 게시물을 검사 또는 검열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1. 1) 제3자를 비방하거나 중상 모략하여 명예를 손상시키는 경우
    2. 2) 공공질서,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내용인 경우
    3. 3) "연구원"의 저작권, 제3자의 저작권등 기타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인 경우
    4. 4) "연구원"에서 규정한 게시기간을 초과한 경우
    5. 5) 상업성이 있는 게시물이나 돈벌이 광고, 행운의 편지 등을 게시한 경우
    6. 6) 사이트의 개설취지에 맞지 않을 경우
    7. 7) 기타 관계법령을 위반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5. 5. "연구원"은 "회원"이 등록한 게시물을 활용해 가공, 판매, 출판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제5장 정보제공 제16조 (정보의 제공)
  1. "연구원"은 "회원"에게 필요한 정보나 광고를 전자메일이나 서신우편 등의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회원"은 이를 원하지 않을 경우 가입신청 메뉴와 회원정보수정 메뉴에서 정보수신거부를 할 수 있습니다. 단, 정보 수신 거부한 "회원"에게도 제13조5항의 "연구원" 공지 메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제6장 손해배상 및 면책 제14조 (책임)
  1. "연구원"은 "서비스" 이용과 관련하여 "연구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한 "회원"에게 발생한 어떠한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2. "연구원"은 "서비스" 이용과 관련한 정보, 제품, 서비스, 소프트웨어, 그래픽, 음성, 동영상의 적합성, 정확성, 시의성, 신빙성에 관한 보증 또는 담보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제15조 (면책)
  1. "연구원"이 천재지변 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회원"에게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제16조 (관할법원)
  1. "서비스" 이용과 관련하여 소송이 제기될 경우 "연구원"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 또는 대한민국의 민사소송법에 따른 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합니다.
  2. 본 약관의 해석과 적용 및 본 약관과 관련한 분쟁의 해결에는 대한민국법이 적용됩니다.

부 칙
  1. 이 약관은 2008년 10월 6일부터 시행합니다.

개인정보수집 및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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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Collection구술테마 컬렉션/경제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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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 1931.11.07

생산기관 한국외대 면담자 홍현웅 면담자정보
검독자 홍현웅 면담 총시간 06시간 18분21초
조회수 1782 스크랩수 0
면담일(장소) [ 총3회 ]
  • 2011-11-04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구술자 자택)
더 보기 ▼
간략 소개

  • 구술자료 상세
1. 과제개요
1960~70년대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국제적 배경 및 외교적 동인에 대한 구술채록을 주목적으로 한다. 그동안 한국 경제성장과 관련된 외교적 측면의 연구 공백 및 문헌자료 상의 한계를 국내외 경제외교 관련 인사에 대한 구술채록을 통해 수집․보완한다. 구술채록의 세부 영역에 대한 사전적 조사 및 체계를 수립함과 아울러, 국내외 관련 인사에 대한 방대한 사전조사를 기반으로, 문헌자료를 통해 얻기 힘든 배경 및 요인, 과정에 대한 상세한 구술을 채록한다. 아울러 1960~70년대 한국 경제정책과 연관된 세계 각국과의 외교에 대한 상세 내역을 관계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채록함으로써, 기존의 외교학 및 역사학 분야의 연구에서 확보가 어려웠던 사료군을 창출한다.
2. 구술개요
최근 근황, 회고록 출간에 관한 이야기, 유년 시절 및 고향 이야기, 영문과 진학계기, 한국전쟁 시절 에피소드,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계기와 그 시절 생활, 귀국 후 교수 생활, 공직관, 남한의 농지개혁, IMF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 서강학파에 대하여,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핵,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박정희 대통령의 평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 및 전반적인 시대 상황의 이야기,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의 평가, 외자도입을 위한 한일국교 정상화와 월남 파병, 외자도입에 대한 미국의 입장, 외자도입 망국론, 교수자문단 활동 과정의 에피소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평가, 금리와 은행 민영화 등 재무부와 기획원과의 갈등, 농어촌 부채탕감, 중화학공업, 김정렴, 유신정우회, 재무부 장관, 재무위원, 금융론, 주병교, 전두환, 허화평, 이병철, 남덕우, IMF총회, 대일차관, 나카야마 소헤이, 와타나베 미치요, 금융산업, 관치금융, 경제기획원, 외국 합작은행, 노태우, 김만제, <6.29>, 조순, <4.4 경제 활성화대책>, 우루과이 라운드, 김용환, 황병태, 김봉호, 박준규, 이종찬, 민정당, 홍재형, 민자당, 김영삼, 밀턴 프리드만, 박정희.
1회차 면담 / 2011-11-04 / 02:14:16
1. 면담개요
최근 근황, 회고록 출간에 관한 이야기, 유년 시절 및 고향 이야기, 영문과 진학계기, 한국전쟁 시절 에피소드,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계기와 그 시절 생활, 귀국 후 교수 생활, 공직관, 남한의 농지개혁, IMF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 서강학파에 대하여,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핵,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박정희 대통령의 평가 등.
2. 주요색인어
경제인연합원로자문, 이승만, 미군통역, 경제학, 위스컨신주립대학, 시카고주립대학, 프리드먼, 신화폐금융론, 공짜 점심, 토지개혁, 금융산업, IMF, 박정희, 박근혜, 김정렴, 김병국, 이정환, 김만제, 서강학파, 독재, 민주화, 남덕우, 빈곤의 악순환, 이양하, 권중희, 송욱, 정소영, 대일청구권, 서독 광부, 간호사, 화폐개혁, 한일국교정상화, 구본호.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1-1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구술선언 및 최근 근황
  • 구술 시작선언
  • 최근 근황 등 활동
  • 최근 탈고한 회고록에 관한 이야기
00:00:00 ~ 00:06:44 동영상 재생
2. 유년 시절 및 학창시절 이야기
  • 고향인 인천의 기억과 추억담
  • 인천, 일제시대의 한국에서 생산되는 쌀과 소금 등을 일본, 만주로 수송하기 위해 건설한 경인선, 수인선 등과 관련된 이야기.
  • 수인선을 타고 학교를 다녀 지각을 자주했던 이야기
  • 기차를 기다리며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
  • 거창한 장래 희망이나 꿈은 없었다는 이야기
  • 누님들이 동네에 일본 중앙대학을 다닌 사람을 부러워했다는 이야기와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승만 박사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구술함.
00:06:45 ~ 00:15:27 동영상 재생
3. 육이오 전쟁 당시의 경험
  • 육이오 전쟁 발발 당시의 기억
  • 십군단의 통역으로 일하게 됐던 이야기
  • 중공군의 투입으로 후퇴해 제이 국민병으로 입대한 이야기
  • 제주도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로 밀항을 해 학교로 다시 돌아간 이야기
00:15:28 ~ 00:24:52 동영상 재생
4. 서울대 영문과를 선택했다가 유학을 결심한 이야기
  • 서울대 영문과를 진학하게 된 계기와 당시 공부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고등고시를 잠시 준비하다가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
  •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기내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함.
  • 한국의 비참한 현실과 미국을 비교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야되겠다는 결심을 하게됨.
00:24:53 ~ 00:36:10 동영상 재생
5. 미국유학 당시의 경험과 학, 석, 박사 학위를 따는 과정
  • 학교에서 한국에 관한 강연을 많이 했었고 강연료가 유학자금에 도움이되었다.
  • 서울대 학점을 인정받아 영문과 학사를 따게 됨.
  • 미조리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어 엘마 우드라는 학자를 만나 영향을 받음.
  • 학비 마련을 위해 시니어 하스피탈에서 일했던 이야기.
  • 시카고 대학에서 프리드먼을 만나게 되었지만 좋지않은 일이 생겨 위스컨신 대학으로 트렌스퍼를 했고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게 됨.
  • 위스컨신 대학에서 사모님을 만났던 이야기와 귀국하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
00:36:11 ~ 00:46:10 동영상 재생
1-2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들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비참했던 한국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함.
  • 이화여대 부총장을 지냈던 박 마리아 여사이 사모님에게 보냈던 편지에 관한 에피소드를 구술함.
  • 편지에 쓰여있는 4.19와 이강석의 일가족 자살에 관한 이야기.
  • 연세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군사혁명이 발발, 병역 미필로 그만 둬야했다.
  • 연세대학을 그만둔 상황에서 화폐금융론에 관한 저술을 하였고 그 책이 많이 팔림.
00:46:11 ~ 00:56:41 동영상 재생
2. 4.19 당시의 한국의 상황과 다른 나라의 평가
  • 4.19 당시는 미국에서 논문을 쓸 때라 잘 알지못하고 미국 사람들도 한국을 잘모르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
  • 그 당시의 한국을 일본은 데모로 사는 나라, 데모크라시라고 불렀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 실업자가 많고 기아와 가난이 심각했었다.
00:10:31 ~ 00:14:45 동영상 재생
3. 남한 토지개혁에 대한 설명과 육칠십년대 한국 경제의 현실
  • 구술 후 녹취록 검독 등 후속 작업에 대한 궁금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눔.
  • 남한의 토지개혁에 의미와 성과 등에 대해 농업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이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고 평가함.
  • 구십팔년에 있었던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사태에 대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한국의 절대빈곤에 대한 설명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박정희 대통령의 노력을 설명함.
  • 내자, 외자를 도입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서독 광부파병, 베트남전 참전 등을 소개함.
00:00:00 ~ 00:13:28 동영상 재생
1-3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낙후된 금융 산업과 IMF 사태의 원인의 경과
  • 미국의 차관보 번스의 한일국교정상화 및 베트남전 파병 요청을 했던 이야기.
  • 경제 개발의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생겨난 정경유착과 부족했던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대해 구술함.
  • 그런 과정에서 금융산업이 실물경제에 비해 아주 낙후되어있었다는 이야기와 아이엠에프 당시 단기자금을 장기로 대출해준게 잘못됐다는 분석을 함.
  • 금융감독 기관의 힘이 약하고 세계 경제에 관한 정보의 부족 등 다양한 원인으로 IMF의 사태가 발발했다.
00:13:29 ~ 00:28:28 동영상 재생
1-4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교수자문단에 대한 평가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에피소드
  • 서강대에 있었을때부터 당시 서강대에 재학중이던 박근혜양과 알고 지냈으며 박정희 대통령과 그 가족과의 에피소드를 소개함.
  • 심사평가교수에게 어용학자라는 비난이 있지만 그것은 오해로 정말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 박정희 대통령과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차가 안다녀 걱정했다는 에피소드와 대통령앞에서 브리핑할 때 김학렬씨가 돌아가셨던 에피소드를 소개함.
00:28:29 ~ 00:35:59 동영상 재생
1-5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서강학파에 대한 소개
  •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연세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같이 근무하던 남덕우 총리를 만나게 된 이야기.
  • 서울대 부교수로 있다가 김병국이라는 위스컨신대학 선배가 서강대학으로 자신을 스카웃했다고 이야기함.
  • 서강대학으로 옮기면서 남덕우 총리와 미조리 대학 후배였던 김만제씨를 스카웃함.
  • 서강대학이 당시에 많은 연구 용역을 수주했으며 남덕우씨가 재무부 장관으로 구술자가 금융통화운영위원으로, 김만제씨가 KDI원장으로 가면서 실물경제에 관여를 하게 되면서 서강학파로 불리게 됨.
00:36:00 ~ 00:50:37 동영상 재생
1-6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장면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에 관해
  • 장면 정권의 경제개발 계획을 박정희 정권이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보면 누가해도 비슷한 정책이 나올수 밖에없었다.
  •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권의 차이점은 지도력과 개발의지였기 때문에 5.16이 일어나지않고 장면 정권이 이어졌다면 경제발전은 어려웠다.
  • 역사적 발전 단계에서 강한 정권 다음에 유순한 정권, 유순한 정권 다음엔 강한 정권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00:00:00 ~ 00:10:30 동영상 재생
1-7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공직관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헌법적 가치, 즉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며, 경제적인 부분은 다소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프라이드를 갖고 일해야한다.
  • 공짜점심은 없다라는게 프리드먼에게 배운 경제학의 에센셜인데 요즘에는 공짜점심을 주려는 정치인과 공짜 점심을 먹으려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
  • 최근에 자신이 강연한 내용과 기고한 글에 대한 이야기
00:14:46 ~ 00:26:58 동영상 재생
2회차 면담 / 2011-11-10 / 02:10:37
1. 면담개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 및 전반적인 시대 상황의 이야기,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의 평가, 외자도입을 위한 한일국교 정상화와 월남 파병, 외자도입에 대한 미국의 입장, 외자도입 망국론, 교수자문단 활동 과정의 에피소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평가, 금리와 은행 민영화 등 재무부와 기획원과의 갈등, 농어촌 부채탕감, 중화학공업 등.
2. 주요색인어
박정희, 남덕우, 외자도입, 공업화, 외자도입 망국론, 상업차관, 박정희 리더십, 수출주도, 자원개발, 계획경제, 경제개발, 독재, 교수자문단, 김정렴, 대중경제론, 김학렬, 금융통화위원, 석유메이저, 고속도로, 중화학공업, 민주화, 재무부, 경제기획원, 건설부, 이종찬, 금리 인하, 은행 민영화, 8.3조치, 김재익, 농어촌고리채정리, 석유파동, 방위산업, 닉슨, 정주영, 김우중, 강경식, 장기영, 신병현, 베트남 전쟁, 한일회담 등.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2-1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구술 선언
  • 구술시작선언
  •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게된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설명함.
  •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공약을 들고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시한 것은 경제 재건이었다.
  •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정책은 초기에는 농업중심이었지만 공업화로 방향을 바꾸면서 수출주도형, 외자도입으로 진행하게 된다.
  • 훌륭한 근로자, 관료, 기업가가 있어서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이들을 결집시켜 경제발전에 성공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이다.
  • 경제발전은 정치적 안정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00:00:00 ~ 00:18:08 동영상 재생
2. 한일 국교정상화와 월남전 파병
  • 박정희 대통령의 등장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던 당시의 국민적 열망도 있었고, 그의 통치를 단순히 독재로 매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 당시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월남전 파병을 해서 자금을 들여오고, 이를 근대화를 위한 중요한 자금원이 된다.
  •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전 파병의 배경에는 원조중단과 주한미군 월남파병 등 미국의 압력 아닌 압력도 있었다.
  • 여러 비난이 있지만 외화도입에는 시기가 중요했기 때문에 다소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정책을 강행해나갔다.
00:18:09 ~ 00:27:52 동영상 재생
3. 한국의 공업화 정책에 대한 미국의 반응
  • 당시 일본에 의해 북한은 공업화의 기반이 조성돼 있었고 남한은 공업 인프라가 없는 농업, 광업 중심이었다.
  • 미국은 당시 한국의 공업화에 대해 공업화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고 후진적인 상황이어서 공업화가 어렵다고 생각해, 생활안정, 물가 안정 등에 치중했다.
  • 한편으로는 한국이 잘 살게 돼야 미국의 부담이 덜어질 것으로 생각해 원조, 공공차관 등을 제공했다.
  • 이밖에도 미국은 한국의 수출 시장을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역할을 무척 컸다.
00:27:53 ~ 00:33:28 동영상 재생
2-2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외자도입과 관련된 이야기
  • 소위 지식인들이 좌파적인 사고를 많이 갖고 있어, 외자도입 망국론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또한 그것을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한 측면도 있다.
  • 한국사람들은 동업하는 것을 싫어하고 외국인의 직접 투자를 꺼리는 성향이 있어 무분별하게 외자를 도입한 측면이 없지않다.
  • 당시는 투자의 결실이 나오는 단계가 아닌 인프라 구축 등으로 계속 외자가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외자망국론은 약간의 과장도 없지않다.
00:33:29 ~ 00:39:53 동영상 재생
2-3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교수 자문단의 역할과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매력
  • 교수자문단은 박정희 대통령이 경찰이나, 중앙정보부의 공식적인 채널 외에 진정한 민심을 알기 위해 운영했던 여러 채널 중에 하나였다.
  • 당시에 구술자는 취업률이 높아지면서 소득분배가 개선된 내용에 대해 보고한 적이 있다.
  • 71년 대선 유세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유세라는 말을 하는게 좋겠다는 조언을 교수자문단에서 한 적이 있다.
  • 박정희 대통령은 작은 것에도 신경을 쓰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다.
00:39:54 ~ 00:52:55 동영상 재생
2. 교수 자문단 활동시 에피소드
  • 구술자가 공업화에 따른 자금 수요의 변화에 따른 공급 구조 개편 계획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던 중 김학렬씨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김정렴 비서실장이 대통령께 전달해 발표가 중간에 끝난 적이 있었다.
  • 김학렬씨에 대한 평가와 대중경제론에 대한 비판을 부탁했다는 일화와 석유가 인상에 대한 인터뷰로 타퉜던 에피소드를 소개함.
  • 한국의 번영과 근대화를 위해 정부와 교수는 괴리되지않고 합심하여 노력했으며 이를 가능케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대단하다.
00:00:00 ~ 00:09:07 동영상 재생
3.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평가
  • 교수자문단은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련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가했다. 당시 군사문화에서 파생된 브리핑 등은 굉장한 장점으로 모든 국민들이 오개년 계획을 중심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파악할 수 있었다.
  • 1차개발계획은 농업 중심, 농업집약적 산업을 위주였으며, 2차는 기간산업, 3차는 중화학 공업 위주, 4차는 사회개발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 경제 발전을 통해 얻은 것은 첫째, 기아로 부터의 해방, 둘째, 국가와 기업 경영에 대한 노하우 체득, 셋째,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 획득이다.
00:09:08 ~ 00:21:44 동영상 재생
2-4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경제 발전에 있어 관료들의 역할과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갈등
  • 경제 발전에 있어 관료들의 역할을 중요하긴 하지만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통합시킨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다.
  •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예산을 편성 및 기획하고 각 부처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경제기획원이 생기게 된다.
  • 경제기획원은 재무부와는 외환수급, 금리 조정 등 갈등이 생길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00:21:45 ~ 00:30:57 동영상 재생
2-5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재무부 장관 재직시 경제기획원, 청와대와 마찰을 일으켰던 실제 경험담.
  •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강력한 안정화 정책을 취했다.
  • 당시 인플레를 잡기위해 금리를 이십오 프로 정도나 돼 부실기업이많이 생겨나고 국제 경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 재무부 입장에서는 금리를 인하해야만 했고, 신병현 부총리는
  • 여기에 끝까지 반대해 재무부 장관의 권한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한적이 있다.
  • 은행 민영화를 한꺼번에 할지, 단계적으로 할지로 청와대 김재익
  • 수석과 의견대립이 있었다.
  • 금리문제, 은행 민영화 문제 등으로 재무부와 잦은 마찰이 있자
  • 경제기획원 직원들이 재무부 주요 직책을 맡는 이른바 재무부 점령 사건도 있었다.
00:30:58 ~ 00:47:39 동영상 재생
2-6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팔삼(8.3) 조치에 대하여
  •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한국정부는 의도했건, 안했건 인플레 정책에 의해 자금 조달한 측면이 있다. 그러다 1965년 장기영 부총리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 금리가 현실화되면서 기업의 차입금 부담이 커지면서 재무 상태가 악화됐고 중화학 공업 위주의 3차 경제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길수 있어 팔삼조치를 실시한다.
  • 팔삼조치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3차 오개년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만 기업이 자금차입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왔다.
00:47:40 ~ 00:58:28 동영상 재생
2-7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한국사회의 모럴 해저드와 중공업 분야의 과잉중복투자에 대하여
  • 한국사회에 빚을지고도 갚지않으려는 모럴 해저드가 좀 심한
  • 편이다. 예를 들면 학자금 대출, 무분별한 카드 발행, 농어촌 고리채 정리 등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8.3조치는 이러한 기업과 개인들의 모럴 해저드를 심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 중공업은 경제발전에도 필수적이었지만 당시의 급변하는 국제
  • 정세하에서 방위산업 양성이라는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무척 중요했다.
  • 기업가들의 경쟁 심리로 인해 중공업 분야야 과잉중복 투자
  • 가 많았다. 이러한 투자가 끝날 때쯤 찾아온 석유파동과 그로인한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정부가 개입해 중공업 분야의 구조조정을 해야하는 상황까지 가져왔다.
00:00:00 ~ 00:15:25 동영상 재생
2. 지금까지 구술에 대한 점검과 다음 구술에 대하여
  • 구술자가 자신의 구술이 너무 두서 없지않냐고 이야기해 다들
  • 그렇게 한다고 안심시켜 드림. 그 과정에서 남덕우 총리가 구술했던 상황을 이야기함.
  • 다음번 구술은 정계 입문, 재무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 겸
  • 부총리로 재직할 당시의 에피소드, 노태우 정권에 대한 평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총평, 후세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 등을 질문할 것이라고 설명함.
00:15:26 ~ 00:19:14 동영상 재생
3회차 면담 / 2011-11-30 / 01:53:28
1. 면담개요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 유신정우회의 활동, 재무부 장관 시절의 정책, 경제부총리 시절 경제 정책에 관하여, 조순 전 부총리와의 의견차이, 금융실명제와 관련된 정치적 요소, 노태우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 앞으로 후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등.
2. 주요색인어
김정렴, 유신정우회, 재무부 장관, 재무위원, 금융론, 주병교, 전두환, 허화평, 이병철, 남덕우, IMF총회, 대일차관, 나카야마 소헤이, 와타나베 미치요, 금융산업, 관치금융, 경제기획원, 외국 합작은행, 노태우, 김만제, <6.29>, 조순, <4.4 경제 활성화대책>, 우루과이 라운드, 김용환, 황병태, 김봉호, 박준규, 이종찬, 민정당, 홍재형, 민자당, 김영삼, 밀턴 프리드만, 박정희.
3. 구술 자료 상세 목록
3-1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구술준비 및 정계 입문에 대하여
  • 최근 탈고한 자서전을 보여주며 책 속의 사진에 대해 설명을 함
  • 다음 구술 질문 등을 확인하고 구술 시작선언을 함.
  •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9대 국회 유신 정우회 국회의원이 되게 된 이야기를 함.
  • 유신정우회 경제발전 연구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학계와 정계의 차이점 등에 대해 이야기함.
00:00:00 ~ 00:13:00 동영상 재생
2. 재무부 장관 시절의 이야기
  • 재무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계기와 재무부 장관으로 들어가게된 이야기와 당시의 상황을 구술함.
  • 재무부 장관으로 들어가서 중점을 뒀던 정책은 한국에 대한 외국의 대외신뢰도 향상과 이를 통한 외자 유치였다.
  • 대일, 대미 특사를 요청했던 이야기와 아이엠에프 총회 등 해외를 순방하며 한국경제에 대해 설명했던 일 등 전두환 대통령과의 에피소들 구술함.
  • 일본과의 협상에서 백억엔의 차관을 얻어옴으로써 다른 국가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00:13:01 ~ 00:29:35 동영상 재생
3. 낙후된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한 노력
  • 정부 주도의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한국의 금융산업은 무척 낙후된 상태였고 이런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당시 중요한 과제였다.
  •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금융산업의 대형화, 외국의 금융기관이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일본, 중동의 금융기관과 합작은행 설립이 추진되었고, 이중 미국과 일본과의 합작은행이 설립됐다.
  • 중동의 경우는 장영자씨의 남편이었던 이철희씨가 관련돼 합작은행 설립이 좌절됐다.
  • 이러한 국제 금융기관과의 합작은행 설립은 경제적 고려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안보적 측면에서의 이점도 고려됐다.
00:29:36 ~ 00:39:45 동영상 재생
3-2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은행민영화를 위한 노력과 이를 둘러썬 청와대와 재정부의 갈등
  • 관치금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민영화가 꼭 필요했고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점진적인 민영화를 추진했다.
  • 김제익 청와대 경제 수석은 은행 민영화의 전면적 실시를 주장했고, 재무부에서는 단계적 실시를 주장했다.
  • 자본시장 개방을 위해 10년 계획을 수립하고 점진적인 개방을 준비했었고 후에 IMF사태에서 충격이 덜할수 있었다.
00:39:46 ~ 00:45:42 동영상 재생
3-3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경제부총리로 재직했을 때의 이야기
  • 서강학파의 정계, 행정계 진출에 대해 학계에서는 안정 위주였다가, 실무에서는 성장 중심으로 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구술자가 경제부총리가 됐을 때도 언론에서는 성장주의자가 또 들어왔다는 낙인을 미리 찍었었다.
  •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는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은 시기였다.
  • 토지공개념, 금융실명제라는 큰 개혁을 추진하던 시기였지만 구술자가 부총리가 되어서 4.4 경제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금융실명제를 유보하였다.
00:45:43 ~ 00:58:00 동영상 재생
2. 경제부총리로 재직했을 때의 이야기2
  •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여건이 성숙되지않은 상태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 자금이 부동산 투기나 해외로 유출, 지하경제로 숨어들 가능성이 있어 금융실명제를 유보하였다.
  • 그러한 조치로 시민단체로부터 친재벌적이라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 매각 정책으로 재벌에게도 비판을 듣는 등 양쪽 모두에서 욕을 먹었다.
  • 86, 87, 88년의 호황은 우리 경제의 실력이 아닌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에 의한 반사이익이었음으로 기술경쟁력 확보, 수출 증대를 위한 시설 투자를 위해 자금을 사용했고 이는 경기증진을 위하 했다는 세간의 평가는 사실과 다르다.
  •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과 아홉수에서만 재무부 장관, 부총리 등 중책을 맡아야만 했다.
00:00:00 ~ 00:14:25 동영상 재생
3. 조순 총리와의 정책적 차이
  • 조순 총리와는 교수출신에, 금융론 전공, 미국 유학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종종 비교가 되곤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않다.
  • 조순씨가 총리를 하고 있을 때는 구술자가 민정당 정책위 의장을 하고 있을 때로 당시는 여소야대 상황으로 정국을 주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 구술자는 개혁에 대해 점진적, 단계적 개혁을 주장하였고 이와 관련해 정부측과 대립이 있었다.
00:14:26 ~ 00:19:03 동영상 재생
3-4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노태우 정부시절의 평가와 정계은퇴
  • 노태우 정부는 개혁에 초점을 맞춰 국정을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부총리도 자주 바뀌고 부작용이 많이 생겼다.
  •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주택 이백만호 건설, 지방자치제 등 부담이 많은 정책이었지만 대통령의 의지로 밀고 나갔다.
  • 대통령의 부탁으로 부총리만 전념하다가 수서 사건에 책임을 지고 부총리에서 물러났다. 김영삼 정부에서도 당의 정책위 의장을 맡게됐으나 금융실명제 보완 주장을 비롯해 당내의 상황이 자신과 맞지않아 자발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00:19:04 ~ 00:34:21 동영상 재생
3-5회 구술 상세목록 구술시간 영상
1.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
  • 6.29 선언 이후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압도적인 숫자로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손꼽았다.
  • 이른바 386세대를 보듬지 못하고 빈곤타파를 위해 앞만보고 달렸던 것은 조금 잘못한 점이었다.
  • 민주화는 경제적 발전이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으며 경제발전은 또한 정치적 안정이 바탕되어야 한다.
  • 박정희 대통령은 굳은 의지와 영도력을 발휘해 다소의 비판을 받았지만 경제발전을 가져온 훌륭한 지도자로 이러한 지도자를 가진 것은 대한민국에게 행운이었다.
  • 우리나라에 훌륭한 관료와 근면한 근로자, 훌륭한 기업인이 있어서 박정희 대통령이 가능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않는다. 이들을 훌륭하게 만든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었다.
00:34:22 ~ 00:46:42 동영상 재생
2.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 자신의 기본 철학은 밀턴 프리드만에게 배운 공짜점심은 없다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서, 국회에서 일했다. 이는 우리 국민이 꼭 명심하고 지켜야 할 내용으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리스나 스페인, 이태리같은 나라처럼 어려움을 겪게 된다.
  • 양극화는 반드시 해결돼야하며 여기에도 공짜점심이 없다는 것이 적용된다.
  • 빈곤층을 위해 싼 가격을 유지하다보면 염가경제의 패러독스가 발생할 수 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후배들을 이러한 경제원칙을 잘 알고했으면 좋겠다.
00:46:43 ~ 00:55:28 동영상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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